이야기 4116

고래를 위하여 / 정호승

고래를 위하여 / 정호승​ ​ 푸른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 푸른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종무식에서 나눌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하는 일은 참 좋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2023년을 기다립니다

2022.12.30

약해지지 마 / 시바타 도요

약해지지 마 / 시바타 도요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가끔은 아무나 잡고 얘기하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조금은 시원해질까? 그런 그런 생각들 중에서 ,,, 오늘 평생을 다닌 직장을 떠나는 친구와 점심을 하면서 삶에서 하나는 남았구나 생각했습니다 풋풋했던 기숙사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지만 참 행복한 인연입니다 우리에게 이제, 시간은 묻습니다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결정하는 시간들이다

2022.12.28

그리움 / 이시영

그리움 / 이시영 두고 온 것들이 빛나는 때가 있다 빛나는 때를 위해 소금을 뿌리며 우리는 이 저녁을 떠돌고 있는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등불 하나 켜든 이 보이지 않고 등불 뒤에 속삭이며 밤을 지키는 발자국소리 들리지 않는다 잊혀진 목소리가 살아나는 때가 있다 잊혀진 한 목소리 잊혀진 다른 목소리의 끝을 찾아 목 메이게 부르짖다 잦아드는 때가 있다 잦아드는 외마디소리를 찾아 칼날 세우고 우리는 이 새벽길 숨가쁘게 넘고 있는가 하늘 올려보아도 함께 어둠 지새던 별 하나 눈뜨지 않는다 그래도 두고 온 것들은 빛나는가 빛을 뿜으면서 한 번은 되살아나는가 우리가 뿌린 소금들 반짝반짝 별빛이 되어 오던 길 환히 비춰주고 있으니 기다림과 바램은 차이가 있을까? --- 누구에게나 공정히 주어지는 시간, 그 속에서 잠시..

2022.12.28

바다여 당신은 / 이해인

바다여 당신은 / 이해인 내가 목놓아 울고 싶은 건 가슴을 뒤흔들고 가버린 거센 파도 때문이 아니다 한 밤을 보채고도 끊이지 않는 목쉰 바람소리 탓도 아니다 ​ 스스로의 어둠을 울다 밫을 잃어버린 사랑의 어둠 ​ 죄스럽게 비좁은 나의 가슴을 커다란 웃음으로 용서하는 바다여 저 안개 덮인 산에서 어둠을 걷고 오늘도 나이게 노래를 다오 ​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나에게 노래를 다오 ​ 언젠가는 모두가 쓸쓸히 부서져 갈 한 잎 외로운 혼임을 바다여 당신은 알고 있는가 ​ 영원한 메아리처럼 맑은 여운 어느 파안 끝에선가 종이 울고 있다 ​ 어제와 오늘 사이를 가로 누워 한번도 말이 없는 묵묵한 바다여 잊어서는 아니될 하나의 노래를 내게 다오 ​ 당신의 넓은 길로 걸어가면 나는 이미 슬픔을 잊은 행복한 작은 배 ..

2022.12.25

폭설(暴雪) / 오탁번

폭설(暴雪) / 오탁번 ​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 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여 ..

2022.12.23

폭설​ / 류근

폭설​ / 류근 ​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온밤 내 욕설처럼 눈이 내린다 ​ 온 길도 간 길도 없이 깊은 눈발 속으로 지워진 사람 떠돌다 온 발자국마다 하얗게 피가 맺혀서 이제는 기억조차 먼 빛으로 발이 묶인다 내게로 오는 모든 길이 문을 닫는다 ​ 귀를 막으면 종소리 같은 결별의 예감 한 잎 살아서 바라보지 못한 푸른 눈시울 살아서 지은 무덤 위에 내 이름 위에 아니 아니, 아프게 눈이 내린다 참았던 뉘우침처럼 눈이 내린다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사나흘 눈 감고 젖은 눈이 내린다 ​ 몇 일째 코로나19에 감염되어 고열에 고생 중 입니다 조금은 나아진 느낌입니다 최강 한파가 찿아온 아침에, 가족들에게 안전..

2022.12.23

대설 / 안도현

대설 / 안도현 상사화 구근을 몇 얻어다가 담 밑에 묻고난 다음날 눈이내린다. 그리하여 내두근거림은 더해졌다. 꽃대가 뿌리속에 숨어서 쌔근쌔근 숨쉬는 소리 방안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누웠어도 들린다. 너를 생각하면서부터 나는 뜨거워졌다. 몸살 앓는 머리맡에 눈은 겹겹으로 내려 쌓인다. 겨울에 이르렀다는 동지가 내일 입니다 이번 겨울은 참 특별한 선물을 받습니다 어른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배웁니다

2022.12.21

삶은 고달파도 인생의 벗 하나 있다면/ 이채

삶은 고달파도 인생의 벗 하나 있다면/ 이채 그리 자주 세상이 나를 속이지는 않지만 가끔 속일 때면 '다 잊어 버려'라는 말로 가슴까지 촉촉이 눈물 맺히게 하는 이슬 같은 벗 하나 있다면 어쩌다가 마주치는 벼랑끝에서도 덥썩 두 손을 잡고 '포기 하지마'라는 말로 다시 뜨는 내 안의 작은 불빛 등잔 같은 벗 하나 있다면 왠지 쓸쓸하고 허전할 때 한 줄기 바람처럼 단숨에 달려와 '힘 내'라는 말로 인간적인 따스함를 느끼게 하는 햇살 같은 벗 하나 있다면 인연이 깊다 한들 출렁임이 없겠는가 마는 그 모습 그대로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바위처럼 믿음직한 벗 하나 있다면 세상이 만만하더냐 사람이 만만하더냐 그 무엇 하나 만만하지 않아도 내가 너인듯 싶고 네가 나인듯 싶은 내 마음의 풍경 같은 인생의 벗 하..

2022.12.17

송광사, 그 화려했던 가을 날!

송광사의 아침 / 허형만 아침이라고는 하나 산문을 채 빠져나가지 못한 안개가 층층나무 무량층에 걸터앉아 조계산 등성이를 마악 건너온 넋새 한 마리 밤이슬 젖은 머리 쓰다듬어주고 있다 그려 그려 고생했네 고생했네 삭신도 내려놓으면 홀연 이 아침처럼 화엄이 보일 터 노스님 예불 소리에 처머 끝 풍경이 운다, 울어 깨끗해지는 한 생애여 무성한 시간의 수풀 사이로 나도 돌아갈 길이 보이는 듯. 일주문, 불일암, 송광사로 한바퀴 걷습니다 암자의 겨울 준비로 곶감 말리기 ㅎ 불일암 가는길, 무소유길 걷습니다 아름다운 대숲길,,,! 바람에 서걱이는 소리가 예술 입니다 불일암이 잘 보이는 곳에서 물 한모금 마시며, 법정 스님의 책 구절을 잠시 떠 올려 봅니다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

202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