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4115

당신과 겨울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이채

당신과 겨울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이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면 마음 스친 당신과은 인연중의 인연이 아니겠는지요 아직 당신을 사랑한다 말한 적은 없지만 당신과 하얀 겨울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한번 쯤 꼭 가보고 싶었던 눈 내리는 곳으로 그곳이 어딘지는 알지 못해도 혼자 갔었던 예전의 그곳보다 좀 더 하얀 곳으로 좀 더 따뜻한 곳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언제 돌아올지도 정하지 맙시다 아무런 준비없이 아무런 약속없이 발길 닿는 그곳으로 그냥 떠났다가 그냥 돌아옵시다 당신과 내가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돌아오기에 길을 잃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돌아오기에 길을 잃지 않을 만큼만 떠났다가 내일을 걸어가기에 늦지 않을 만큼에서 돌아오는 꼭 그만큼 되는 그곳으로 떠나기로 합시다 돌아와 먼 ..

2023.02.08

이 길이 선물이 아니라면 / 문정희

이 길이 선물이 아니라면 / 문정희 이 길이 선물이 아니라면 햇살마다 눈부신 리본이 달려 있겠는가 아침저녁 해무가 젖은 눈빛으로 걸어오겠는가 이 길이 선물이 아니라면 고요가 풀잎마다 맺히고 벌레들이 저희끼리 통하는 말로 흙더미를 들추어 풍요하게 먹고 자라겠는가 길섶마다 돌들이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 바람을 따라 일어서겠는가 발뒤꿈치를 들어 나는 그저 어린 날 배운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 보는 길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눈이 여름이 되어도 내려올 생각 없이 까치처럼 흰 눈을 머리에 쓴 채 그윽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이 길 설산으로 향한 이 길이 선물이 아니라면 저녁 노을 앞에서 문득 문정희 시인의 가을 우체국이란 시간 떠올랐다 --- 가을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다가 문득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 노을..

2023.02.05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해인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해인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결움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봄에 들어선다는 뜻의 입춘(入春), 24절기의 첫번째 입니다 새 봄 행복하십시요 삶이 오르막이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시고, 혹시 내리막이시거든 더욱 홀가분 하십시요 이번 봄에는 마음으로 걸..

2023.02.04

봄의 사람 /나태주

봄의 사람 /나태주 내 인생에 봄은 갔어도 네가 있으니 나는 여전히 봄의 사람 너를 생각하면 가슴속에 새싹이 돋아나 연초록빛 야들야들한 새싹 너를 떠올리면 마음속에 꽃이 피어나 분홍빛 몽골몽골한 꽃송이 네가 사는 세상이 좋아 너를 생각하는 내가 좋아 내가 숨쉬는 네가 좋아 아름다운 것은 고통속에서 피어나나니 내 사랑이여 이 순간 마음껏 즐기시라 살아있는 이 순간을 사랑합니다

2023.02.01

입춘 / 공석진

입춘 / 공석진 입춘이란다 무심한 짧은치마는 한파를 비웃고 쇼윈도 마네킹은 화려한 꽃무늬로 입춘을 반긴다만 폭설로 고개 넘기를 포기하고 먼길을 우회하는 심정을 어쩔 것이냐 서울역 행려병자의 객사하는 산송장을 옆에 두고 속없는 세상 사람들의 봄 타령은 어쩔 것이냐 입춘이란다 체감하기 어려운 봄은 다가오는데 내 마음의 한파는 도무지 풀릴 줄 모르는데 입춘이란다. 봄이 오려나 봅니다 저녁 공기가 포근합니다 돌아서 걸어오면서 생각? 내가 노력한 만큼 내가 소유할 수 있는게 아름다운 세상!

2023.01.31

봄비 / 용혜원

봄비 / 용혜원 ​ 봄비가 내리면 온통 그 비를 맞으며 하루 종일 걷고 싶다 겨우내 움츠렸던 세상을 활짝 기지개 펴게 하는 봄비 봄비가 내리면 세상 풍경이 달라지고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내 마음에도 흠뻑 비를 맞고 싶다 내 마음속 간절한 소망을 꽃으로 피워 내고 싶다 입춘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내일부터 기온도 오르고,,,, 봄 소식이 들려오리라 봅니다 마음속에 꽃씨 하나 심어 봅니다 그, 희망은 가끔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23.01.30

기도 / 유지나

기도 / 유지나 눈이 따스하여 세상을 곱게 바라보게 하소서 귀가 온화하여 타인의 말을 부드럽게 듣게 하소서 입이 향기로워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주게 하소서 손이 선하여 누군가의 감사가 되게 하소서 마음이 온유하여 이픔이의 위로가 되게 하소서 생각이 맑아 모두를 깨끗이 닦아주게 하소서 영혼이 맑아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게 하소서 겨울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은 꽃을 피우리라

2023.01.28

부재(不在) / 김춘수

부재(不在) / 김춘수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맨드라미 나팔꽃 봉숭아 같은 것 철마다 피곤 소리없이 져 버렸다. 차운 한겨울에도 외롭게 햇살은 청석(靑石) 섬돌 위에서 낮잠을 졸다 갔다. 할일없이 세월(歲月)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유지나 시인의 글처럼,,,, 희망, 그것은 때때로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을 쪼음 느낍니다

2023.01.27

시다의 꿈 / 박노해

시다의 꿈 / 박노해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밋빛 꿈을 잘라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뚝 잘라 피 흐르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아직은 시다 미싱대에 오르고 싶다 미싱을 타고 장군처럼 당당한 얼굴로 미싱을 타고 언 몸뚱아리 감싸 줄 따스한 옷을 만들고 싶다 찢거진 살림을 깁고 싶다 떨러 오는 온몸을 소름치며 가위질 망치질로 다짐질하는 아직은 시다, 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으로 찬 바람 치는 공단거리를 허청이며 내달리는 왜소한 시다의 몸짓 파리한 이마 위으로 새벽별 빛나다 오랜 지인의 생일에 ..

2023.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