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다의 꿈 / 박노해

농돌이 2023. 1. 26. 21:37

시다의 꿈  / 박노해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밋빛 꿈을 잘라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뚝 잘라

피 흐르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아직은 시다

미싱대에 오르고 싶다

미싱을 타고

장군처럼 당당한 얼굴로 미싱을 타고

언 몸뚱아리 감싸 줄

따스한 옷을 만들고 싶다

찢거진 살림을 깁고 싶다

 

떨러 오는 온몸을 소름치며

가위질 망치질로 다짐질하는

아직은 시다,

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으로

찬 바람 치는 공단거리를

허청이며 내달리는

왜소한 시다의 몸짓

파리한 이마 위으로

새벽별 빛나다

 

오랜 지인의 생일에 축가를 불렀습니다

이지훈에 사랑합니다

 

내 안에서 빛과 떨림으로 다가오던 저녁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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