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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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앞에서 / 이해인산 2023. 3. 18. 10:04
매화 앞에서 / 이해인 보이지 않기에 더욱 깊은 땅속 어둠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꽃잎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하던 희디흰 봄 햇살도 꽃잎 속에 접혀 있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 순 없지 매화도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 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 신념 , 세상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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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쓴다/천양희삶 2023. 3. 5. 07:36
너에게 쓴다/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가 다 닳았다 꽃이 진 자리에 잎이 폈다고 너에게 쓰고 잎이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인생이 되었다 마침내 내 삶 풍화되었다. (매화축제는 10일부터 이나 개화는 30% 정도,,,,? 다음주 주말 지나면 만개 예상) 매화꽃 향기가 봄바람에 날립니다 아내와 잠시 꽃소식 접하러 나갔습니다 많은 사람과 넓은 지구에서 당신을 만나고, 함께 살아온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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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 유지나삶 2023. 2. 18. 18:35
당신은 / 유지나 삶에 힘든 일도 많지만 당신은 늘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엔 나쁜 일도 많지만 당신은 늘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엔 아픈 일도 많지만 단신은 늘 즐거운 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엔 어려운 일도 많지만 당신은 모든 게 쉬웠으면 좋겠습니다 살다보면 안 되는 일도 많지만 당신은 다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엔 불행한 일도 있지만 당신은 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소중하니까 늘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주간 모두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매일 피고, 지는 꽃이 있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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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 공석진삶 2023. 1. 31. 21:07
입춘 / 공석진 입춘이란다 무심한 짧은치마는 한파를 비웃고 쇼윈도 마네킹은 화려한 꽃무늬로 입춘을 반긴다만 폭설로 고개 넘기를 포기하고 먼길을 우회하는 심정을 어쩔 것이냐 서울역 행려병자의 객사하는 산송장을 옆에 두고 속없는 세상 사람들의 봄 타령은 어쩔 것이냐 입춘이란다 체감하기 어려운 봄은 다가오는데 내 마음의 한파는 도무지 풀릴 줄 모르는데 입춘이란다. 봄이 오려나 봅니다 저녁 공기가 포근합니다 돌아서 걸어오면서 생각? 내가 노력한 만큼 내가 소유할 수 있는게 아름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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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 있어 주세요 / 류경희삶 2022. 12. 4. 11:46
그 자리에 있어 주세요 / 류경희 기다리지 말아요 애써 찾으려고도 하지 말구요 그 자리에 있을께요 무엇을 위해 살든 무엇을 얻기 위해 살든 왜 사느냐 묻지 말아요 우리가 느끼는 것은 보이는 것이 다 아니잖아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밝은 눈을 가져야 해요 오만과 편견 아집과 미련스러움 다 버려요 순수한 현재를 사랑해요 고요속에 외침을 외쳐봐요 누구든지 메아리를 줄 것입니다 그자리에 있을께요 그자리에 있어 주세요 우린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성스런 모습 태초의 아담과 하와였으면 해요 오늘은 쉼 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해볼 요량 입니다 차를 타고 동해바다로 갈 겁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하고 싶은 거 하십시요 당신과 내가 하는 일에, 싫어할 할 사람은 무엇을 해도 싫어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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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를 바라보며산 2022. 9. 13. 18:39
황해 낙조(落照) / 황동규 '서방(西方)으로 간다'는 동서양 말 모두 죽는다는 뜻이고 오늘 태안 앞바다 낙조는 서쪽으로 갈매기 한 떼를 날리며 바다 위에 한없이 출렁이는 긴 붉은 카펫을 깔았다. 죽을 땐 그 위를 걸어 곧장 가라는 뜻이겠지. 저고리와 고름 채 안 보이지만 하늘이 붉은 치마 반쯤 풀고 카펫 하도 황홀히 출렁여 정신없으리. 제대로 가지 못하고 도중에 멍하니 발길 멈추리. 두 세상 사이에 서서 오도 가도 못 하고. 황동규,『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문학과지성사, 2003) 명절, 긴 연휴를 보내고, 아들과 낙조를 바라보며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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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화엄사 여행산 2022. 8. 27. 15:03
무량 / 전영관 봄비 속살거리고 안개까지 자욱해 아슴아슴 젖어드는데 화엄사 가자하네 기가 센 곳이라 일주문부터 쭈뼛했었지 만발하는 흑매가 보통 귀신은 아니다 싶어 벽사 삼아 마들가리를 주워왔었지 입에만 담아도 무거운 화엄보다 요사채 툇마루에 앉아 당신에게 간질밥 먹여도 될 것 같은 부여 무량사를 고집부리네 사미*처럼 파르래한 눈웃음도 무례는 아니고 석탑을 데우는 볕처럼 무량하고 사무치는 봄날이라 전생부터 이생의 우환들을 널어놓고 싶네 극락전 처마선이 당신 플레어스커트만큼 황홀하다고 너스레 떨어놓고는 딴청부리겠네 배롱나무 아래 골똘한 당신은 뒤꿈치에 자운영 보랏빛을 묻혀오겠지 쿡, 쿡 옆구리 찌르며 천치처럼 웃으려고 내 팔꿈치에 복사꽃 연분홍을 바르고 싶네 꿀 발라 경단을 빚듯 벌들이 잉잉거려서 물색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