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여행 184

봄 / 유안진

봄 / 유안진저 쉬임 없이 구르는 윤회의 수레바퀴 잠시 멈춘 자리 이승에서, 하 그리도 많은 어여쁨에 홀리어 스스로 발길 내려 놓은 여자, 그 무슨 간절한 염원 하나 있어 내 이제 사람으로 태어났음이랴​머언 산 바윗등에 어리 운 보랏빛, 돌담을 기어오르는 봄 햇살, 춘설을 쓰고 선 마른 갈대대궁 그 깃에 부는 살 떨리는 휘파람 얼음 낀 무논에 알을 까는 개구리 실뱀의 하품소리, 홀로 찾아든 남녘 제비 한마리 선머슴의 지게 우에 꽂혀 앉은 진달래꽃······​처음 나는 이 많은 신비에 넋을 잃었으나 그럼에도 자리 잡지 못하는 내 그리움의 방황 아지랑이야 어쩔 샘이냐 나는 아직 춥고 을씨년스러운 움집에서 다순 손길 기다려지니속눈썹을 적시는 가랑비 주렴 너머 딱 한 번 눈 맞춘 볼이 붉은 소년 ​내 너랑 첫눈..

2025.03.01

그래도 아름다운 길이네 / 박노해

그래도 아름다운 길이네 / 박노해인생은 먼 길이네우리 길동무되어 함께 가자삶은 험한 길이네아침마다 신발끈을 고쳐매자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네지금 이 순간을 최후처럼 살자그래도 아름다운 길이네유쾌한 기분으로 치열히 걸어가자결국은 혼자 남는 길이네고독을 추구하며 우리 함께 가자 자신의 아품은 자신에게 있어서만 절대값이다(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2025.02.10

가난한 가을 / 노향림

가난한 가을 / 노향림 가난한 새들은 더 추운 겨울로 가기 위해새끼들에게 먼저 배고픔을 가르친다.제 품속에 품고 날마다 물어다 주던 먹이를 끊고대신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킨다.누렇게 풀들이 마른 고수부지엔 지친새들이 오종종 모여들고 머뭇대는데어미 새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음울한 울음소리만이높은 빌딩 유리창에 부딪쳐 아찔하게떨어지는 소리만이 가득하다.행여 무리를 빠져나온 무녀리들 방향 없이빈터에서라도 낙오되어 길 잃을까드문드문따듯한 입김 어린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그 지시등 따라 창 밑까지 선회하다가있는 힘 다해 지상에서 가장 멀리 치솟아 뜬허공에 무수히 박힌 까만 충치 자국 같은 비행체들캄캄한 하늘을 날며 멀리로 이사 가는철새들이 보이는 가을날의 연속이다. 친구들과 마시고 떠들던 가을 갑니다누구는..

2024.11.14

노을 시편/천양희

노을 시편/천양희강 끝에 서서 서쪽으로 드는노을을 봅니다노을을 보는 건 참 오래된 일입니다오래되어도 썩지 않는 것은 하늘입니다하늘이 붉어질 때 두고 간 시들이생각났습니다 피로 써라그러면....생각은새떼처럼 떠오르고나는 아무 것도쓸 수 없어마른풀 몇 개를 분질렀습니다피가 곧 정신이니....노을이 피로 쓴 시 같아노을 두어 편 빌려 머리에서 가슴까지길게 썼습니다 길다고 다 길이겠습니까그때 하늘이 더 붉어졌습니다피로 쓴 것만을사랑하라....내 속으로 노을 뒤편이드나들었습니다쓰기 위해 써버린 많은 글자들 이름들붉게 물듭니다노을을 보는 건 참 오래된 일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사랑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그리곤 살과 뼈를 깍는 고통을 통해서만 발전을 이루는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그는 더더욱 사..

2024.09.20

커피 가는 시간 / 문정희

커피 가는 시간 / 문정희아직도 쓸데없는 것만 사랑하고 있어요가령 노래라든가 그리움 같은 것상처와 빗방울을그리고 가을을 사랑하고 있어요. 어머니아직도 시를 쓰고 있어요밥보다 시커먼 커피를 더 많이 마시고몇 권의 책을 끼고 잠들며직업보다 떠돌기를 더 좋아하고 있어요바람 속에 서 있는 소나무와홀로 가는 별과 사막을미친 폭풍우를 사랑하고 있어요전쟁터나 하수구에 돈이 있다는 것쯤 알긴 하지만그래서 친구 중엔 도회로 떠나하수구에 손을 넣고 허우적대기도 하지만단 한 구절의 성경도단 한 소절의 반야심경도 못 외는 사람들이성자처럼 흰옷을 입고땅 파며 살고 있는 고향 같은 나라를 그리며오늘도 마른 흙을 갈고 있어요. 어머니    아내와 드라이브,,, 사랑이 우리를 살리고, 사랑으로 우리는 이룬다돌아보면 ,마음 아팟던 첫..

2024.09.09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 양성우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 양성우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살아 있는 것은아름답다.모든 들꽃과 꽃잎들과 진흙 속에 숨어 사는것들이라고 할지라도,그것들은 살아 있기 때문에 아름답고 신비하다.바람도 없는 어느 한 여름날,하늘을 가리우는 숲 그늘에 앉아보라.누구든지 나무들의 깊은 숨소리와 함께무수한 초록잎들이 쉬지 않고 소곤거리는 소리를들을 것이다.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이 순간에,서 있거나 움직이거나 상관없이 살아 있는 것은아름답다.오직 하나,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그것들은 무엇이나 눈물겹게 아름답다.  무엇을 기대하기보다는  커피 한 잔 마시러 떠나는 곳마주하는 풍경이 편안합니다 편안하게 감싸 앉아주는 자연과의 인연도 큰 행복입니다

2024.07.28

연잎 앞에서 /오탁번

연잎 앞에서 /오탁번 연잎에 내리는 여름 한낮 빗방울처럼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그리움 따라연잎마다 크낙한 손바닥 하나씩 펴고호수 위에 떠다니는 내 마음 손짓하네 물결 따라 일렁이는 푸른 연잎을 보면내 눈빛 잠자리 겹눈처럼 밝아지지만사랑한다고 속삭이던 그때 그 입술은예쁜 연꽃 봉오리로 아직도 숨어 있네 이른 아침 연잎에 내리는 이슬방울인 듯마주보며 피워올린 첫사랑의 꽃봉오리!아무도 모르는 물밑 아득한 깊이에서지울 수 없는 사랑으로 피어나는 연꽃! 연잎에 내리는 저녁나절 빗방울인 듯아직도 눈에 밟히는 그리운 얼굴아잔잔한 호수 물결 지는 듯 다시 일때서늘한 연잎 위에 푸른 눈썹 떠오르네  무엇하나 꾸며진 것 없이,,,고마운 사람이 있다

2024.07.06

몇번의 겨울 / 천양희

몇번의 겨울 / 천양희 하늘 추워지고 꽃 다 지니 온갖 목숨이 아까운 계절입니다 어떤 계절이 좋으냐 그대가 물으시면 다음 계절이라고 답하지는 않겠습니다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봄이라고 아주 평범한 말로 마음을 움직이겠습니다 실패의 경험이라는 보석 저에게는 있습니다 내가 간절한 것에 끝은 없을 것입니다 겨울 별미, 굴물회를 마시는 시간, 여행이건, 음식이건, 기억이 좋으면 거기에 머무른다 멀리 사는 지인들을 불러서 즐기며 추억이 되었다

2024.01.21

겨울은 그리움의 혼불입니다 / 고은영

겨울은 그리움의 혼불입니다 / 고은영 잠 못 드는 긴긴 겨울 밤 우리 들은 추억 여행을 위해 길을 나섭니다 하얗게 쏟아지는 눈길을 더듬는 회상은 자리에 누워 시간을 거슬러 올라도 과거의 멋 곳에 닿아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바람의 나락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의 아픈 조각들을 들춰내고 욕되지 않는 숭고한 고해처럼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와서 비로소 용서라는 단어를 나열합니다 삶의 모양이 서러울수록 왜소해지는 강기슭에 외로움을 지피며 밤새 우는 바람소리 어느 신작로 가난하고 초라한 귀퉁이에서 우리는 보고픈 사람들과 애잔한 눈길을 보듬고 깊은 포옹과 행복한 미소로 조우를 하고 감격의 눈물로 시리고 추운 가슴을 뎁혀줍니다 행복과 슬픔의 동시성 속에 아픔으로 굽이치던 단애의 나날들을 위로하고 위로받습니다 고문 같은 삶이..

2024.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