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명승,고적 84

예산 추사고택을 걸으며

예산 출신.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완당(阮堂)·예당(禮堂)·시암(詩庵)·과노(果老)·농장인(農丈人)·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등이다. 조선조의 훈척 가문(勳戚家門)의 하나인 경주 김문(慶州金門)에서 병조판서 김노경(金魯敬)과 기계 유씨(杞溪兪氏)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나 큰아버지 김노영(金魯永) 앞으로 출계(出系: 양자로 들어가서 그 집의 대를 이음)하였다. 그의 가문은 안팎이 종척(宗戚: 왕의 종친과 외척을 아울러 이르던 말)으로 그가 문과에 급제하자 조정에서 축하를 할 정도로 권세가 있었다. 1819년(순조 19년)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예조 참의·설서·검교·대교·시강원 보덕을 지냈다. 1830년 생부 김노경이 윤상도(尹商度)의 옥사에 배후 조종 혐의로 고금도(古今島)..

가을정취 물씬 나는 해미 향교,,,!

〔 해미향교 〕 충청남도 기념물 제117호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 226,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해미향교길 2-13 1407년(태종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숙종 때와 1844년(헌종 10)·1967년에 각각 중수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성전·동재(東齋)·서재(西齋)·내삼문(內三門)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소장전적으로는 판본 16종 81..

가을빛이 짙어가는 홍주성

홍주성을 한바퀴 걸어봅니다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홍주 입니다 〔 홍주성 〕 홍성 홍주읍성(洪城 洪州邑城)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에 있는 읍성이다. 1972년 10월 14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31호 홍주성(조양문, 아문, 산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7월 28일 홍성 홍주읍성으로 명칭변경되었다. 현재의 성은 조선 문종 1년(1451년)에 수축한 것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과 동문인 조양문(朝陽門), 동헌인 안회당(安懷堂), 여하정이 남아있다. 서쪽에 경의문(景義門), 북쪽에 망화문(望華門)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소실되었다. 충남 홍성군에 있는 읍성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홍주성을 돌아보며,,,!

여 백 / 도종환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화선지/ 이외수 새 한마리만 그려 넣으면 남은 여백 모두가 하늘이어라. 내 마음에 새를 살게하면 나는 하늘이 되고 내 눈에 별을 담아두면 나는 우주가 된다. 내 마음을 하얗게 비워 평안의 여백이 내게 있어지길 그곳에 그가 있어, 내가 배우..

홍주 천년의 숨결을 즐기다!

눈이 소복하게 내린 새벽, 홍주 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홍주성을 한바퀴 돌아본다 어릴적부터 존재하던 유적이라서 소중함도, 역사도,,,, 모르고 생활하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홍주성 안에 있던 행정기관(법원, 검찰,세무서,문화원)이 이전하고, 역사박물관이 들어서는 등 정비사업이 한창이기도 하다 역사[편집] 995년 고려 성종 14년에 운주(運州)라 하였다. 1356년 고려 공민왕 5년에 홍주목(洪州牧)으로 승격하였다. 1413년 조선 태종 13년에 실시된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홍주목과 결성군이 두어졌고 홍주목에서는 16개 군현을 관할했다. 1530년 조선 중종 25년 홍주부(洪州府)를 두었다. 1895년 음력 윤5월 1일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이 추진되면서 지방제도가 23부제로 개편됨에 따라 홍주부로 승격되..

한옥마을에서 !

지난 금요일 한옥마을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아주 오랫만에 구들에 몸을 누이고, 쉬었습니다 잠시 멈춰진듯한 느낌, 다름 세상같은 느낌이었지만 금방 익숙해졌습니다 어릴적 생활이 한옥이었으니까요? 오랫동안 보존하여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송년의 시 / 윤보영 이제 그만 훌훌 털고 보내주어야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하루를 매만지며 안타까운 기억 속에서 서성이고 있다 징검다리 아래 물처럼 세월은 태연하게 지나가는데 시간을 부정한 채 지난날만 되돌아보는 아쉬움 내일을 위해 모여든 어둠이 걷히고 아픔과 기쁨으로 수놓인 창살에 햇빛이 들면 사람들은 덕담을 전하면서 또 한 해를 열겠지 새해에는 멀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찾고 낯설게 다가서는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올해보다 더 부드러운 삶을 살아야겠다 산을 옮기고 강을 막지는 못하지만..

홍주성의 가을!

지난주 아침, 잠시 일상 업무를 보고, 복귀하다가 홍주성을 바라보니 아주 멋졌습니다 잠시 멈추고 겔노트4로 촬영하여 보정하였습니다 제 고장에 있는 멋진 유적과 정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많은 아품도 있지만 지난 교황님 방문 시 복자 4분이 탄생하셨고, 순교의 아픔도 있는 곳입니다 두번의 폭설로 앙상한 가지만 남았습니다 가을을 기다려야죠! 사적 제231호로 지정되어 있는 홍주성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은 홍주아문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간 곳이다. 돌을 잘 다듬어 얌전하게 쌓아올린 4m 높이의 석축이 둘러 있다. 현재 남은 길이는 810m 정도인데 이것도 일제 강점기에 일본사람들이 서문과 북문을 철폐하고 성곽을 허무는 것을 읍민들이 강경하게 반대하여 이만큼이나마 남은 것이다. 원래 성곽길이는 1,772m 였다..

해미읍성을 한바퀴 돌고!

해미읍성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377에 위치하였고, 교황의 방문으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자료를 찿아보면, 조선시대 건축된 성 중에서는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성으로, 서산시에서는 해미읍성을 이용한 축제와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매년 6월에 해미읍성 역사체험 축제(서산해미읍성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교회사(敎會史)에서는 약 3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 박해로 처형당한 천주교 순교 성지(殉敎聖地) 중 한 곳이다. 이곳은 선조 12년(1578) 충무공 이순신이 병사영의 군관으로 부임하여 10개월간 근무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1414년(태종 14) 충청병마절도사영이 덕산(德山)에서 이곳으로 이설되었다. 해미읍성은 원래 왜구의 출몰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건축되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