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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감사 / 박노해

삶에 대한 감사/ 박노해 ​하늘은 나에게 영웅의 면모를 주지 않으셨다그만한 키와 그만한 외모처럼그만한 겸손을 지니고 살으라고 하늘은 나에게 고귀한 집안을 주지 않으셨다힘없고 가난한 자의 존엄으로세계의 약자들을 빛내며 살아가라고  하늘은 나에게 신통력을 주지 않으셨다상처받고 쓰러지고 깨어지면서 스스로 깨쳐가며 길이 되라고  하늘은 나에게 위대한 스승도 주지 않으셨다노동하는 민초들 속에서 지혜를 구하고최후까지 정진하는 배움의 사람이 되라고  하늘은 나에게 희생과 노력으로 이루어낸내 작은 성취마저 허물어 버리셨다낡은 것을 버리고 나날이 새로와지라고  하늘은 나에게 사람들이 탐낼만한 그 어떤 것도 주지 않으셨지만그 모든 씨앗이 담긴 삶을 다 주셨으니무력한 사랑 하나 내게 주신 내 삶에 대한 감사를 바칩니다고향집..

2025.02.16

사랑하는 별 하나 / 이성선

사랑하는 별 하나 / 이성선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외로워 쳐다보면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세상일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가슴에 환하게 안기어눈물짓듯 웃어주는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우러러 쳐다보면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길을 비추어 주는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지난 설날에 성묘가면서 한 장! 매듭을 짓는다는 것은  또 다른  시작에 대한 기대감이다,  꿈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새 봄을 기다립니다

2025.02.02

구름과 바람의 길 / 이성선

구름과 바람의 길 / 이성선실수는 삶을 쓸쓸하게 한다.실패는 생(生) 전부를 외롭게 한다.구름은 늘 실수하고바람은 언제나 실패한다.나는 구름과 바람의 길을 걷는다.물 속을 들여다보면구름은 항상 쓸쓸히 아름답고바람은 온 밤을 갈대와 울며 지샌다.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길구름과 바람이 나의 길이다.변화 속에서도 가치를 지켜내는 리더, 더 큰 조화를 이루며 함께 나아가는 동행을 생각합니다

2025.02.01

신년시 / 안도현

신년시 / 안도현 닭이 울어 해는 뜬다당신의 어깨 너머 해가 뜬다우리 맨 처음 입맞출 때의그 가슴 두근거림으로,그 떨림으로 당신의 어깨너머 첫닭이 운다해가 떠서 닭이 우는 것이 아니다닭이 울어서 해는 뜨는 것이다 우리가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처음 눈 뜬 두려움 때문에우리가 울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울었기 때문에세계가 눈을 뜬 것이다 사랑하는 이여,당신하고 나하고는이 아침에 맨 먼저 일어나더도 덜도 말고 냉수 한 사발 마시자 저 먼 동해 수평선이 아니라 일출봉이 아니라냉수 사발 속에 뜨는 해를 보자 첫닭이 우는 소리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우리가 세상의 끝으로울음소리 한번 내질러보자세상이 평화롭고 서로 사랑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또 누군가로부터 동시에 사랑받게 되는  일은, 참으로 신이..

2025.01.05

성탄 편지 /이해인

성탄 편지 / 이해인​​친구여, 알고 계시지요?사랑하는 그대에게제가 드릴 성탄 선물은오래 전부터가슴에 별이 되어 박힌 예수님의 사랑그 사랑 안에 꽃피고 열매 맺은우정의 기쁨과 평화인 것을.​슬픈 이를 위로하고미운 이를 용서하며우리 모두 누군가의 집이 되어등불을 밝히고 싶은 성탄절잊었던 이름들을 기억하고먼데 있는 이들을가까이 불러들이며 문을 엽니다.​죄가 많아 숨고 싶은우리의 가난한 부끄러움도기도로 봉헌하며하얀 성탄을 맞이해야겠지요?자연의 파괴로 앓고 있는 지구와구원을 갈망하는 인류에게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을우리 다시 그대에게 드립니다.​일상의 삶 안에서새로이 태어나는 주님의 뜻을우리도 성모님처럼겸손히 받아 안기로 해요.그 동안 못다 부른 감사의 노래를함께 부르기로 해요.​친구여, 알고 계시지요?아기예수의..

2024.12.24

겨울사랑/박노해

겨울사랑 /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무엇으로 헤아리고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 하고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아아 겨울이 온다추운 겨울이 온다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계절의 변화의 끝은 겨울입니다삶의 기나긴 노력의 끝은 나이듬입니다 삶의 길이란, 단 한 하나의 길, 남과 다른 길을 걸어온 우리는 아름답습니다오늘의 겨울 추위와 고통,삶의 복잡함도 강하게 이겨온 우리에겐 즐거움 입니다

2024.12.21

술 한잔 / 정호승

술 한잔 / 정호승인생은 나에게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겨울 밤 막다른 골목 끝포장마차에서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나는 몇 번이나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인생은 나를 위해 단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눈이 내리는 날에도돌연 꽃 소리없이 피었다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행동만을 약속해라     --프리드리히 니체 --

2024.12.07

선운사의 가을이 가려고 합니다

가을 편지 / 고정희​작별할 수 없는 내 사랑 서러워그대에게 뻗은 가지 잘라버렸습니다그러나 마음속에 무성한 가지 있어마음의 가지는 자르지 못했습니다길을 끊고 문을 닫아도문을 닫고 가지를 잘라도저녁 강물로 당도하는 그대여그리움에 재갈을 물리고움트는 생각에 바윗돌 눌러도풀밭 한 벌판으로 흔들리는 그대여그 위에 해와 달 멈출 수 없으매나는 다시 길 하나 내야 하나 봅니다나는 다시 문 하나 열어야 하나 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로운 시간이 아니라,자신의 색을 찾고 더욱 진하게 그리는 정체성의 공간이다--- 니체 -- 떠나려는 가을을 붙잡고 놀고 옵니다2년만에 다녀온 선운사 도솔천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2024.11.23

가난한 가을 / 노향림

가난한 가을 / 노향림 가난한 새들은 더 추운 겨울로 가기 위해새끼들에게 먼저 배고픔을 가르친다.제 품속에 품고 날마다 물어다 주던 먹이를 끊고대신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킨다.누렇게 풀들이 마른 고수부지엔 지친새들이 오종종 모여들고 머뭇대는데어미 새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음울한 울음소리만이높은 빌딩 유리창에 부딪쳐 아찔하게떨어지는 소리만이 가득하다.행여 무리를 빠져나온 무녀리들 방향 없이빈터에서라도 낙오되어 길 잃을까드문드문따듯한 입김 어린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그 지시등 따라 창 밑까지 선회하다가있는 힘 다해 지상에서 가장 멀리 치솟아 뜬허공에 무수히 박힌 까만 충치 자국 같은 비행체들캄캄한 하늘을 날며 멀리로 이사 가는철새들이 보이는 가을날의 연속이다. 친구들과 마시고 떠들던 가을 갑니다누구는..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