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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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대한 생각/ 고재종삶 2023. 4. 6. 04:34
길에 대한 생각/ 고재종 마음은 쫓기는 자처럼 화급하여도 우리는 늘 너무 늦게 깨닫는 것일까. 새벽에 일어나 흰 이슬 쓰고 있는 푸성귀밭에 서면 저만큼 버려두었던 희망의 낯짝이 새삼 고개 쳐드는 모습에 목울대가 치민다. 애초에 그 푸르름, 그 싱싱함으로 들끓었던 시절의 하루하루는 투전판처럼 등등했지. 그 등등함만큼 쿵쿵거리는 발길은 더 뜨거웠으니 어느 순간 텅 비어버린 좌중에 놀라, 이미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타협해 버린 연인들처럼, 그렇게, 한번 그르쳐 든 길에서 남의 밭마저 망쳐온 것 같은 아픔은 깊다. 살다 보면 정 들겠지, 아니 엎어지든 차이든 가다 보면 앞은 열리겠지, 애써 눈을 들어 먼 산을 가늠해 보고 또 마음을 다잡는 동안 세월의 머리털은 하얗게 쇠어갔으니, 욕망의 초록이 쭉쭉 뻗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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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나는 / 이해인삶 2023. 4. 4. 07:31
봄이 오면 나는 / 이해인 봄이 오면 나는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앓이를 하고 싶다.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 올리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햇볕이 잘 드는 안뜰에 작은 꽃밭을 일구어 꽃씨를 뿌리고 싶다. 손에 쥐면 금방 날아갈 듯한 가벼운 꽃씨들을 조심스레 다루면서 흙냄새 가득한 꽃밭에 고운 마음으로 고운 꽃씨를 뿌리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매일 새소리를 듣고 싶다. 산에서, 바다에서, 정원에서 고운 목청 돋우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봄을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나는 새들의 이야기를 해독해서 밝고 맑은 시를 쓰는 새의 시인이 되고 싶다. 바쁘고 힘든 삶의 무게에도 짓눌리지 않고 가볍게 날아다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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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아래서 / 김시천삶 2023. 3. 27. 03:55
목련 아래서 / 김시천 묻는다 너 또한 언제이든 네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 그 날이 오면 주저 없이 몸을 날려 바람에 꽃잎 지듯 세상과 결별할 준비 되었느냐고 나에게 묻는다 하루에도 열두 번 목련꽃 지는 나무 아래서 삶에는 해답이 없다는 건가요? 삶에는 여러 가지 해답이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정해진 해답은 없는 거야 --- --오스커! 신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엠마누엘 슈미트 --- 이른 새벽 3시, 하루의 새벽은 참 언제나 신선합니다 농부에게는 농기구가 필요하듯이, 내 마음에 다짐은 하루의 동행 입니다 감사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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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삶 2023. 3. 20. 21:42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이여 상처받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나는 누군가를 용서한 일이 없습니다 나한테 용서를 받아야 할 만큼잘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니에게 잘해준 사람만 있습니다 ---- -- - 사람들은 내가 많은 사람을 용서하고 품었으리라 생각하지만, 나한테 용서를 빌 만큼 잘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못한 일들이 훨씬 많습니다 인간에게든 신에게든 내가 다 용서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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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삼경 (梅花三更) / 이외수삶 2023. 3. 15. 21:29
매화삼경 (梅花三更) / 이외수 그대 외로움이 깊은 날은 밤도 깊어라 문 밖에는 함박눈 길이 막히고 한 시절 안타가운 사랑도 재가 되었다. 뉘라서 이런 날 잠들 수가 있으랴 홀로 등불 가에서 먹을 가노니 내 그리워한 모든 이름 진한 눈물 끝에 매화로 피어나라 올 해도 매화가 피었습니다 언제나 꽃은 피고, 봄은 오지만,,,, 참 새로운 삶의 후반전을 맞이하며 바라보는 꽃은, 조금 안스럽습니다 저 처럼,,, 깊은 성찰과 반성 없이 지내온 시간들이 거울 앞에 괴물이 되어가는 사람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