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 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아무나 오시지 마시고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원추리 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먼저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벌 받은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