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4115

단풍 줍기 / 홍수희

단풍 줍기 / 홍수희 어쩌면 나는, 추억을 줍고 있는 것 너의 웃음소리를 줍고 있는 것 어쩌면 나는, 마음속 눈물을 줍고 있는 것 다 못한 이야기를 줍고 있는 것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세월 흐르면, 어찌 슬픔만 남는 것이어서 후회만 남는 것이어서 40년 넘는 우정을 기꾸는 친구들이 찿아와서 행복했습니다 고딩 졸업 후 만나서 대학과 직장으로 이어진 사람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시기라서 짠하기도 하지만 삶이 성숙해지고, 맛이 들어가는 시기임에 감사합니다 주제 넘게 말했습니다 일을 사랑하고 살아온 우리인데, 이제는 우리 사랑하는 일을 위해서 살자고,,,, 폭설이 내린 성인대가 궁금합니다

2023.01.25

가족사진 / 나태주

가족사진 / 나태주 아들이 군대에 가고 대학생이 된 딸아이마저 서울로 가게 되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자고 했다 아는 사진관을 찾아가서 두 아이는 앉히고 아내도 그 옆자리에 앉히고 나는 뒤에 서서 가족사진이란 걸 찍었다 미장원에 다녀오고 무쓰도 발라보고 웃는 표정을 짓는다고 지어보았지만 그만 찡그린 얼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떫은 땡감을 씹은 듯 껄쩍지근한 아내의 얼굴 가면을 뒤집어쓴 듯한 나의 얼굴 그것은 결혼 25년 만에 우리가 만든 첫 번째 세상이었다 오늘 아침 아들이 서울로 가면서 명절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점심 후, 늘어지게 한 숨 자고나니 다시 저녁입니다 일을 사랑하던 시간이 지나가나 봅니다 이제는 사랑하는 일을 해야할 시간이 되었나 합니다 코로나로 멈추었던 운동을 다시..

2023.01.24

새해에는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이해인

새해에는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이해인 평범하지만 가슴엔 별을 지닌 따뜻함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신뢰와 용기로써 나아가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월의 보름달만큼만 환하고 둥근 마음 나날이 새로 지어먹으며 밝고 맑게 살아가는 "희망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너무 튀지 않는 빛깔로 누구에게나 친구로 다가서는 이웃 그러면서도 말보다는 행동이 뜨거운 진실로 앞서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오랜 기다림과 아픔의 열매인 마음의 평화를 소중히 여기며 화해와 용서를 먼저 실천하는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날이 그날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새롭게 이어지는 고마움이 기도가 되고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아 지루함을 모르는 "기쁨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2023.01.22

섣달 그믐날, 간월암에서 해넘이

송년 엽서 / 이해인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번 스쳐가듯 빨리 왔던 시간들은 빨리도 떠나가지요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간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어서 잊을 것은 잊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습니다 목숨까지도 떨어지기 전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눈길은 고요하게 마음은 뜨겁게 아름다운 삶을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보면 첫새벽의 기쁨이 새해에도 항상 우리 길을 밝혀 주겠지요 해넘이 다녀왔습니다 느림과 긍정을 향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을 그려보며, 침전된 일들을 퍼올려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2023.01.21

지는 노을은 새로운 희망이어라 / 권태주

지는 노을은 새로운 희망이어라 / 권태주 저 해는 365일을 멈추지 않고 지구를 비추었습니다. 동해 바다 위를 힘차게 차고 올라 이 나라 하늘 위를 변함없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 해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 삶의 흔적들도 노을과 함께 지려합니다. 서해의 마지막 저녁 노을 속에 흘러간 세월을 돌아봅니다. 기쁨의 날들은 짧았고 안타깝고 되돌리고 싶은 나날들과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세월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 하늘에 번져가는 붉은 노을처럼 사랑과 희망이라는 기억 또한 아름다움입니다. 축복입니다.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기 위한 거룩한 작별입니다. 섬들 사이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바닷물과 낙조, 그리고 뱃고동 소리 지금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겐 지는 노을은 새로운 희망입니다.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평화의 ..

2023.01.19

정덕수, 한계령에서1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매일지. 삼만육천오백 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2023.01.18

생일을 맞은 그대에게 / 홍수희​

생일을 맞은 그대에게 / 홍수희 ​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바로 오늘 태어난 사랑스런 이여! ​ 밤하늘의 별처럼 많고 많은 사람 중에도 당신은 오직 한 사람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봐요 ​ 꽃들도 저마다 하나이듯이 한낮의 태양도 하나이듯이 당신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오직 한 사람이란 걸 ​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기적인가요 당신은 축복 받아 마땅한 사람! ​ 온 세상을 당신께 드립니다 산과 바다 이 기쁨 모두 당신께 드립니다 삶은 덧 없는 비교에서 자유로와 지는 것---- 천산도 봄이 오려나 다시 가서 손잡고 걷고 싶다

2023.01.16

봄눈 / 정호승

봄눈 / 정호승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절벽 위를 무릎으로 걸어가지 말라 봄눈이 내리는 날 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 나의 사람아.. 사람은, 미움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인생은, 사랑으로 살아내야 한다고 곧고 선한 마음으로 끝내 이겨내야 한다고 -- 그래도 미움으로 살지 말거라, 중에서 박노해 -- 몇 일이 지나면 24절기 마지막인 대한 입니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입춘과 봄을 소망하는 시기입니다 하루종일 비가 내립니다 강원도는 폭설 소식에 산이 그립습니다 사회적 동물로서 명절을 앞두고 이것 저것 하다 보니 하루가 갔..

2023.01.14

그네가 있는 풍경 / 홍수희

그네가 있는 풍경 / 홍수희 흔들거리지 않는 그네는 쓸쓸하다 외롭고 고단한 우리 가는 이 길에 누군가 등 좀 밀어줬다고 허공에서 그대 잠시 즐거웠단 들 너무 탓할 일도 아닌 것이다 너무 나무랄 일도 아닌 것이다 허공에서 뒤척여 보지 않고서야 어찌 낮은 데의 평화를 알 수 있으랴 바람 속에 퍼덕퍼덕 휘둘려 보지 않고서야 어찌 한 길을 가는 잔잔한 행복을 알 수 있으랴 움직이지 않는 그네를 보면 나는 오늘도 뜨거운 손으로 높이 높이 올려주고만 싶다 예전 유럽여행 길에 세느강에서 바라본 에펠 입니다 다시 가고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중국 속담에 가장 힘든 길을 가려거든한번에 한 발씩만 내딛으면 된다. 단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 ,,,,, 되뇌어 보면서, 커피 한잔 음미합니다

2023.01.12

바닷가에서 / 이해인

바닷가에서 / 이해인 오늘은 맨발로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한번은 하느님의 통곡으로 한번은 당신의 울음으로 들렸습니다 삶이 피곤하고 기댈 데가 없는 섬이라고 우리가 한 번씩 푸념할 적마다 쓸쓸함의 해초도 더 깊이 자라는 걸 보았습니다 밀물이 들어오며 하는 말 감당 못할 열정으로 삶을 끌어안아보십시오 썰물이 나가면서 하는 말 놓아버릴 욕심들은 미루지 말고 버리십시오 바다가 모래 위에 엎질러놓은 많은 말을 다 전할 순 없어도 마음에 출렁이는 푸른 그리움을 당신께 선물로 드릴께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슬픔이 없는 바닷가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로 춤추는 물새로 만나는 꿈을 꾸며 큰 바다를 번쩍 들고 왔습니다 희망이 넝쿨처럼 자라서 벽을 덮고, 집을 덮는 담쟁이처럼 힘이 되는 저녁되십시요

2023.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