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 이해인 오늘은 맨발로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한번은 하느님의 통곡으로 한번은 당신의 울음으로 들렸습니다 삶이 피곤하고 기댈 데가 없는 섬이라고 우리가 한 번씩 푸념할 적마다 쓸쓸함의 해초도 더 깊이 자라는 걸 보았습니다 밀물이 들어오며 하는 말 감당 못할 열정으로 삶을 끌어안아보십시오 썰물이 나가면서 하는 말 놓아버릴 욕심들은 미루지 말고 버리십시오 바다가 모래 위에 엎질러놓은 많은 말을 다 전할 순 없어도 마음에 출렁이는 푸른 그리움을 당신께 선물로 드릴께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슬픔이 없는 바닷가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로 춤추는 물새로 만나는 꿈을 꾸며 큰 바다를 번쩍 들고 왔습니다 희망이 넝쿨처럼 자라서 벽을 덮고, 집을 덮는 담쟁이처럼 힘이 되는 저녁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