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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설(暴雪) / 오탁번
    2022. 12. 23. 22:10

    폭설(暴雪) / 오탁번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 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 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울부짖었다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 시집 《손님》 (황금알, 2016) 中에서

    다시 폭설이 내립니다

    몸은 격리되어 수일째 낑낑대며 사는데,,,,

    마음은 산으로 향하니 참 어이없습니다

     

    일주일만에 면도를 하고 앉으니 좋습니다

     

    마음 속 깊이에서 퍼올린 그리움의 부피만큼

    깊어지는 저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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