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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하여 / 문근영

우리를 위하여 / 문근영 사는 일이 자글자글하고 질퍽거릴 땐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 지우고 노심초사 꼭꼭 눌러둔 사연 데리고 무작정 길을 떠나자 불가항력의 벽 앞에서 말로 풀어내지 못한 생각의 편린들도 치명적이었던 증오도 깡그리 지우고, 잘린 시간이 어둠에 잠기어 그리움이 하나씩 제자리로 돌아오는 세월의 길목, 뒤따라온 세월의 바람이 허공을 갉으며 흔들리면 안일하게 잊고 지냈던 잃어버린 우리가 뜨겁게 돋아 화끈거린다지울 수 없는 우리, 지금은 우리를 위하여 얼룩진 긴장을 풀고 무엇인가 하여야 할 때 서툰 밤길 같은 인생에서 서로 길이 되어 환해져 오는 길이 되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렇게 함께 늙어 갈 수 있도록 떠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살아 있음을 감사합니다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

2018.02.25

마음의 액자 / 고두현

마음의 액자 / 고두현 멀리 있는 것이 작아 보이고 가까이 있는 것이 커 보이는 원근법의 원리 이미 배웠지만 세상 안팎 두루 재보면 눈에 멀수록 더 가깝고 크게 보이는 경우도 있지요. 오늘처럼 멀리 있는 당신. 어느 날 문득 내게로 오는 것이 돈오돈수(頓梧頓修)의 유리 거울이라면 끊임없이 가 닿기 위해 나를 벗고 비우는 일이 원근보다 더 애달픈 사랑이라는 걸 마음의 액자 속에서 비로소 깨달은 오늘. 어느 길도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드메트 글 중에서 --

2018.02.25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슬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

2018.02.24

사랑니 / 고두현

사랑니 / 고두현 슬픔도 오래되면 힘이 되는지 세상 너무 환하고 기다림 속절없어 이제 더는 못 참겠네. 온몸 붉디붉게 애만 타다가 그리운 옷가지들 모두 다 벗고 하얗게 뼈가 되어 그대에게로 가네. 생애 가장 단단한 모습으로 그대 빈 곳 비집고 서면 미나리밭 논둑길 가득 펄럭이던 봄볕 어지러워라. 철마다 잇몸 속에서 가슴 치던 그 슬픔들 오래되면 힘이 되는지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 빛나는 뼈로 솟아 한밤내 그대 안에서 꿈같은 몸살 앓다가 끝내는 뿌리째 사정없이 뽑히리라는 것 내 알지만 햇살 너무 따뜻하고 장다리꽃 저리 눈부셔 이제 더는 말문 못 참고 나 그대에게로 가네 오랜 기다림을 안고, 채우지 못하는 결핍을 지고, 다른 존재로 채우려 떠납니다,,,!

2018.02.23

사랑굿 1 / 김초혜

사랑굿 1 / 김초혜 그대 내게 오지 않음은 만남이 싫어 아니라 떠남을 두려워함인 것을 압니다 나의 눈물이 당신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감추어 두는 숨은 뜻은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얻을래야 얻을 수 없는 화염 때문임을 압니다 곁에 있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보내는 아픔이 더 크기에 그립고 사는 사랑의 혹법(酷法)을 압니다 두 마음이 맞비치어 모든 것 되어도 갖고 싶어 갖지 않는 사랑의 보(褓)를 묶을 줄 압니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눈이 내려서 풍경을 만들고,,,! 바람은 그림을 그리고, 지나는 이들에게 잠시, 머무름을 준다.

2018.02.22

기다림,,,!

오늘은 저의 아들이 서울로 면접을 보러 떠났습니다 제 컴퓨터 위에 자신의 소개와 소개를 담은 포트폴리오를 놓고 떠났습니다 애기로만 여겼던 아들에 대한 생각이 첫장을 넘기며 깨집니다 청출어람인듯,,, 가슴 뻑뻑한 저녁입니다 저도 많은 이들의 면접을 봤습니다 그래도 정작 아들에게는 치맥으로 제 마음을 전했습니다 부디 자신이 원하는 일에 취직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과 삶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2018.02.20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 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오늘도, 행복한 발자국을 남기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8.02.10

계룡산 삼불봉 설화, 자연성능 능선,,,!

동행 / 이향아 강물이여, 눈 먼 나를 데리고 어디로 좀 가자. 서늘한 젊음, 고즈넉한 운율 위에 날 띄우고 머리칼에 와서 우짖는 햇살 가늘고 긴 눈물과 근심의 향기 데리고 함께 가자. 달아나는 시간의 살침에 맞아 쇠잔한 육신의 몇 십분지 얼마, 감추어 꾸려둔 잔잔한 기운으로 피어나리. 강물이여 흐르자. 천지에 흩어진 내 목숨 걷어 그 중 화창한 물굽이 한 곡조로 살아 남으리. 진실로 가자. 들녘이고 바다고 눈 먼 나를 데리고 어디로 좀 가자. 조금 늦어서 아쉽지만 설화가 핀 삼불봉,,,! 자연성능 능선과 관음봉, 천왕봉, 연천봉,,,! 사랑이란 우리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꽃입니다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나눕시다 우리네 인생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힐 순간이 있다면 어제의 열매이며..

2018.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