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시 134

봄길 / 정호승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https://youtu.be/8G9ILXSfVi4 (안치환: 봄길 ) 몇 일 후면 정월 대보름이고, 우수도 다가옵니다 소망이 가득한 봄을 기다립니다

2022.02.12

찔레 / 문정희

찔레 /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찔레 꽃 꽃 덤불 / 김용택 아직도 촉촉하게 젖은 눈을 너는 찾지 못했느냐 하얀 찔레꽃이 진다 지는 찔레꽃잎을 따라 어둠 속을 향해 가는 우리들의 손은 얼마나 짧으냐 하얗게 기운 너의 한쪽 어깨가 어둔 강물에 젖..

2021.05.27

봄날은 간다 / 기형도

봄날은 간다 / 기형도 ​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열풍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 반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 패 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 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 들어온 것들의 인사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2021.04.13

봄비 / 김시천

봄비 / 김시천 그대로 인하여 나는 비로소 나를 소망하게 되었다 내 안에 따뜻한 불을 피우고 그대를 위하여 차 한 잔을 준비하는 일이 이렇게 가슴 설레는 일인 줄 나는 몰랐다 그대가 내게로 오는 하염없는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비로소 내가 소망하는 것을 또한 그대가 함께 소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대가 내게 그러하듯이 나 또한 그대에게 단지 그리워하는 일만으로 평생을 산다 하더라도 그대와 내가 서로를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나는 기꺼이 나의 모든 것을 바치려 한다 그것이 비록 작고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대를 향한 그 간절함으로 나를 일으켜 하나의 꽃이 되고자 한다 그대로 인하여 오늘 나는 비로소 나를 소망하게 되었다 긴 기다림으로 핀 벚꽃이 봄비에 떨..

2021.04.03

그래 보고 싶었다 / 김윤진

그래 보고 싶었다 / 김윤진 잘 지냈구나 안정된 목소리가 평안함을 말해주는 너의 부드러움을 접하고야 비로소 나의 혼은 자유로웠다 한곳에 정신을 모으고 있을 땐 그곳에 모두 묶여 있지 낯설고 어두운 국도를 밤새 돌고 도는 듯한 막막함 소식 없는 너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온전히 자리했을 거라 여겼을 땐 이미 빗겨간 후였고 무엇도 아닐 거라 여겼을 땐 다시 돌아와 마음을 지키고 있는 참 무심한 친구였다 잘 있었구나 그리움이 혈관을 타고 흐를 땐 언 눈물이 되었지 그래 보고 싶었다 어떤 숫자로도 매길 수 없는 너의 참 의미를 느끼며 늘 곁에 남아 있기를 바랐다 나무등에 업혀서 봄을 맞이합니다 기다리고, 마음 졸이던 나무,,,, 내일을 향항 생명은 이 봄에, 다시 피어납니다 감사함으로 바라보기엔 너무, 너무 눈물..

2021.03.30

봄꽃을 보니 / 김시천

봄꽃을 보니 / 김시천 봄꽃을 보니 그리운 사람 더욱 그립습니다 이 봄엔 나도 내 마음 무거운 빗장을 풀고 봄꽃처럼 그리운 가슴 맑게 씻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고 싶습니다 조금은 수줍은 듯 어색한 미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피었다 지고 싶습니다 봄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폭설과 한파에 지친 시간을 보내고 멋진 삶의 꽃 피워낼 순서가 되었습니다 봄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2021.03.04

용봉산 백년송(옆으로 사는 소나무)

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 박목월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 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 해외로 나간 친구의 체온이 느껴진다. 참으로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골목길에는 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 다 이루어질 것만 같다. 동·서·남·북으로 틔어 있는 골목마다 수국색(水菊色) 공기가 술렁거리고 뜻하지 않게 반가운 친구를 다음 골목에서 만날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약간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어제 오늘. 어디서나 분홍빛 발을 아장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만나게 된다. ㅡ무슨 일을 하고 싶다. ㅡ엄청나고도 착한 일을 하고 싶다. ㅡ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 속에는 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오고 나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다. 희고도 큼직한 날개가 양 겨드..

2021.02.26

남겨두고 싶은 순간 / 박성우

남겨두고 싶은 순간 / 박성우 시외버스 시간표가 붙어있는 낡은 슈퍼마켓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래된 살구나무를 두고 있는 작고 예쁜 우체국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유난 떨며 내세울 만한 게 아니어서 유별나게 더 좋은 소소한 풍경, 슈퍼마켓과 우체국을 끼고 있는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아 저기 초승달 옆에 개밥바라기! 집에 거의 다 닿았을 때쯤에야 초저녁 버스정류장에 쇼핑백을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돌아가 볼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으나, 나는 곧 체념했다 우연히 통화가 된 형에게 혹시 모르니, 그 정류장에 좀 들러 달라 부탁한 건, 다음날 오후였다 놀랍게도 형은 쇼핑백을 들고 왔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있었다는 쇼핑백, 쇼핑백에 들어있던 물건도 그대로였다 오래 남겨두고 싶은 순간이었다 봄은 ..

2021.02.25

2월의 시/홍수희

2월의 시/홍수희 아직은 겨울도 봄도 아니다 상실의 흔적만 가슴께에서 수시로 욱신거린다 잃어버린 사랑이여, 아직도 아파야 할 그 무엇이 남아 있다면 나로 하여 더 울게 하고 무너진 희망이여, 아직도 버려야 할 그 무엇이 남아 있다면 나로 하여 쓴 잔을 기꺼이 비우게 하라 내 영혼에 봄빛이 짙어지는 날 그것은 모두 이 다음이다 오늘도 집콕합니다 ㅠㅠㅠ

2021.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