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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 기형도삶 2021. 4. 13. 21:17
봄날은 간다 / 기형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열풍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 반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 패 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 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 들어온 것들의 인사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때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주르르 눈물을 흘릴 뿐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서
추억은 내용물 없이 떠오르고
소읍小邑은 무서우리 만치 고요하다, 누구일까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
숙취는 몇 장 지전 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오늘도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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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갑니다.. 좋은 밤 되세요
행복한 주말 되셔요
비가 오려나 봅ㄴㅣ다
봄, 짧지만 그 끝이 있기에 다음도 있는게 아닐까요 ㅎㅎ
감사합니다
새로운 계절이 멋지게 오겠죠!!
늘 선물처럼 기다립니다
봄이 짧아 더 아쉬운거 같습니다...ㅎ
이제 곧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겠죠 ? ㅎㅎ
가는봄이 코로나도 데려갔으면 좋겠습니다...ㅎㅎ
오늘도 인근 대학에서 터져서 난리입니다 서민들 생활이 말이 아니구요 ㅠㅠ
좀 백신이라도 후다닥 맞아서 넘어가길 소망합니다
사진과 시
모두 좋으네요~
감사합니다
평안한 저녁되셔요
이번주가 지나면 점점 날이 더워진다던데 봄이 갈 수록 더 짧아지는 느낌이에요 ㅜㅜ
다음주에 곡우니까 거의 여름입니다
기후 변화로 다음 세대에게 엄청난 재앙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더운 지구!!
요 근래 날씨가 화창해서 너무 좋네요 +_+
행복한 저녁되십시요
오늘은 비도 내리고, 바람도 강하게 붑니다 주말 행복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