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4110

가을여행, 주천 생태공원에서

가을 그림자 / 김재진  가을은 깨어질까 두려운 유리창흘러온 시간들 말갛게 비치는갠 날의 연못저물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찾으러집 나서는황혼은물 빠진 감잎에 근심 들이네.가을날 수상한 나를 엿보는그림자는 순간접착제.빛 속으로 나선 여윈 추억 들춰내는가을은여름이 버린 구겨진 시간표.  가을여행,,,어느 선택이 가장 멋진 선택이었는지는 모릅니다 시간이 흘러서 나이도 가을이 된 지금,미치도록 가슴 뛰는 일을 찿는 것은 무리이지만,내일을 기대하는 삶으로 달려가는 가을이기를 소망해봅니다

2024.11.03

인제 비밀의 정원에서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쿵거린다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너였다가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다시 문이 닫힌다사랑하는 이여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아주 오핸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혼자 있는 ..

2024.10.27

밀물 / 정끝별

밀물 / 정끝별 가까스로 저녁에서야두 척의 배가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벗은 두 배가나란히 누워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무사하구나 다행이야응, 바다가 잠잠해서 어떤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혼자인 느낌이 드는 시간이 있다살펴보고 느껴보면 혼자는 아니었다바람, 석양, 자연의 소리들--그래서 가끔 문을 나서는 것인지 모르겠다

2024.10.20

깊어가는 가을 / 이해인

깊어가는 가을 / 이해인  하늘은 높아 가고마음은 깊어 가네꽃이 진 자리마다열매를 키워 행복한나무여바람이여슬프지 않아도안으로 고여오는 눈물은그리움 때문인가가을이 오면어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고멀리 있는 친구가 보고 싶고죄 없어 눈이 맑았던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네친구여너와 나의 사이에도말보다는 소리 없이강이 흐르고이제는 우리더욱 고독해져야겠구나남은 시간 아껴 쓰며언젠가 떠날 채비를서서히 해야겠구나잎이 질 때마다한 움큼의 시(詩)들을 쏟아내는나무여바람이여영원을 향한 그리움이어느새 감기 기운처럼 스며드는 가을하늘은 높아 가고기도는 깊어 가네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황지..

2024.10.16

어머니 편지 / 임태주

어머니 편지 / 임태주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질 못했다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마음대로라는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2024.10.06

이응노네 가을

연필 깍는 시간 / 김재진 마음속에서 누군가속삭이듯 이야기할 때 있습니다.사각거리며 걸어가는 눈 위의 발소리처럼내 마음속의 백지 위로 누군가긴 편지 쓸 때 있습니다.한 쪽 무릅 세우고뭔가를 깎아 보고 싶어 연필을 손에 쥡니다.주전자의 물이 끓는 겨울 저녁 9시유리창엔 김이 서립니다.내 마음에도 김이 서립니다.때로 몸이 느끼지 못하는 걸마음이 먼저 느낄 때 있습니다.채 깎지 않은 연필로 종이 위에'시간'이라 써 봅니다.좀더 크게 '세월'이라 써 봅니다.아직도 나는내게 허용된 사랑을 다 써버리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가끔은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그러면서 되돌아본다심각하게 체감도 하고,,,,파멸처럼 싸운다생의 한모퉁이를 돌아선 지금,,,세상은 온갖 훌륭한 이론과 철학, 과학,,,, 등이 있지만 몹시도 귀한..

2024.09.27

아름다운 이별 / 윤수천

아름다운 이별 / 윤수천 우리는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비로소 오래 빛날 수 있다.저 높은 곳의 별처럼멀리 떨어져 있음으로써더욱 확실할 수 있다. 누가 이별을 눈물이라 했는가아픔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빛날 수도 없다아픔이 크면 클수록 더욱 빛나는이별은 인생의 보석이다. 헤어짐을 서러워하지 말라이별은 초라하고 가난한 인생에소중하고 눈부신 보석을 붙이는 일두고두고 빛날 수 있는사랑의 명패를 다는 일   아름다운 사치!살다보니 내것을 , 아니면 남의 것을 계산하고,,, 잡고 있느라,,,, 나의 삶에 더 많은 것을 이울수 있었을 것이다허비하고,,,탐하지 않았다면 추석을 지나고 아직은 달이 밝다어둠속에서 저렇게 밝은, 향기로운 빛이 되고 싶었다생각해보렵니다나를 억제하고 다스러온 긴 억제의 시간들어머니를 생각합니다

2024.09.24

노을 시편/천양희

노을 시편/천양희강 끝에 서서 서쪽으로 드는노을을 봅니다노을을 보는 건 참 오래된 일입니다오래되어도 썩지 않는 것은 하늘입니다하늘이 붉어질 때 두고 간 시들이생각났습니다 피로 써라그러면....생각은새떼처럼 떠오르고나는 아무 것도쓸 수 없어마른풀 몇 개를 분질렀습니다피가 곧 정신이니....노을이 피로 쓴 시 같아노을 두어 편 빌려 머리에서 가슴까지길게 썼습니다 길다고 다 길이겠습니까그때 하늘이 더 붉어졌습니다피로 쓴 것만을사랑하라....내 속으로 노을 뒤편이드나들었습니다쓰기 위해 써버린 많은 글자들 이름들붉게 물듭니다노을을 보는 건 참 오래된 일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사랑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그리곤 살과 뼈를 깍는 고통을 통해서만 발전을 이루는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그는 더더욱 사..

2024.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