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4114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 고정희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 고정희 언제부턴가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와도, 거기 내 마음과 그대 마음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르는 세상 불 그림자 멀리 멀리 얼음장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 가시철망 담벼락을 와르르 녹여 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대 따뜻함에 내 쓸쓸함 기대거나 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 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 없다면 곤륜산 가는 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 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쓸쓸함과 내 따뜻함이 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쓸쓸하여 그대 따뜻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따뜻함과 내 쓸쓸함이 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 ..

2023.07.20

다시 아침 / 도종환

다시 아침 / 도종환 내게서 나간 소리가 나도 모르게 커진 날은 돌아와 빗자루로 방을 쓴다 떨어져 나가고 흩어진 것들을 천천히 쓰레받기에 담는다 요란한 행사장에서 명함을 잔뜩 받아온 날은 설거지를 하고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찬물에 차르를 차르를 씻겨나가는 뽀얀 소리를 듣는다 앞차를 쫓아가듯 하루를 보내고 온 날은 초록에 물을 준다 꽃잎이 자라는 속도를 한참씩 바라본다 다투고 대립하고 각을 세웠던 날은 건조대에 널린 빨래와 양말을 갠다 수건과 내복을 판판하게 접으며 음악을 듣는다 가느다란 선율이 링거액처럼 몸 속으로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는 걸 느끼며 눈을 감는다 인생은 자전거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페달로 뒷바퀴를 돌리는 것은 나 자신이지만, 핸들로 앞바퀴의 방향을 정하고,,,, 앞으로 가는 것은 눈으로..

2023.07.20

죽도록 사랑했기에 / 최수월

죽도록 사랑했기에 / 최수월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찢어질 듯한 가슴 안으로 누르지 못하는 아픔이 스며들어 못다 한 사랑 어쩔 수 없이 이젠 서서히 이별로 받아들이지만 백년이 흐르고 천년이 흘러도 어찌 널 놓을 수 있을까. 너와 나 헤어져 강산이 수없이 변한다 하여도 진정 놓을 수 없어 가슴 아프고 아픈 가슴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릴 테지만 이젠 너의 곁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슬픔인데 네가 그리울 때마다 너를 죽도록 사랑하는 나 어떡하면 좋을까. 이렇게 그리워 가슴 아픈데 어떡하면, 어떡하면 좋을까. 죽어서도 널 놓을 수 없는 사랑인 것을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갚을 수가 없습니다

2023.07.17

내가 원하던 삶을 살고 있지 않더라도 / 도종환

내가 원하던 삶을 살고 있지 않더라도 / 도종환 꽃나무라고 늘 꽃 달고 있는 건 아니다. 삼백예순닷새 중 꽃 피우고 있는 날보다 빈 가지로 있는 날이 훨씬 더 많다. 행운목처럼 한 생에 겨우 몇번 꽃을 피우는 것들도 있다. 겨울 안개를 들판 끝으로 쓸러내는 나무들을 바라보다 나무는 빈 가지만으로도 아름답고 나무 그 자체로 존귀한 것임을 생각한다. 우리가 가까운 숲처럼 벗이 되어주고 먼 산처럼 배경 되어주면 꽃 다시 피고 잎 무성해지겠지만 꼭 그런 가능성만으로 나무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빈 몸 빈 줄기만으로도 나무는 아름다운 것이다. 혼자만 버림받은 듯 바람 앞에 섰다고 엄살떨지 않고 꽃 피던 날의 기억으로 허세부리지 않고 담담할 수 있어서 담백할 수 있어서 나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꽃나..

2023.07.17

여름날 저녁 / 김정택

여름날 저녁 / 김정택 온종일 뜨거운 사연 가슴에 품은 해 고개를 조아리며 서산마루에 걸터앉아 시큰둥 바라본다. 동네 우물가 두레박은 아낙네들 바쁜 손놀림에 곤두박질치며 멱감느라 분주하면 시원한 강바람 긴 그림자를 몰고 오니 수초 위에 쉬어가는 노을 빛을 잃고 잠이드네. 잔잔한 강물 위에 달빛이 자맥질하여 파문을 일으키면 웅크린 물새들 힘차게 비상한다. 별빛은 바람과 같이 내 마음속에 서성이면 떠오르는 옛 생각 한 가닥 그리움이 여울가에 아롱거려 세월은 가만히 있고 나만 홀로 추억 찿아 달려가네. 지루한 장마에, 잠시 빼꼼히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잠시 걸었습니다 문명은 자연에 맞서 이뤄낸 성취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타고난 자질을 발휘한 결과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 -- 문병에는 언제나 인간의 ..

2023.07.16

비가 / 유하

비가 / 유하 비가 내립니다. 그대가 비 오듯 그립습니다 한 방울의 비가 아프게 그대 얼굴입니다 한방울의 비가 황홀하게 그대 노래입니다 유리창에 방울 방울 비가 흩어집니다. 그대 유리창에 천갈래 만갈래로 흩어집니다. 흩어진 그대 번개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흩어진 그대 천둥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내 눈과 귀 ,작달비가 등 떠밀고 간 저 산처럼 멀고 또 멉니다. 그리하여 빗속을 젗은 바람으로 휘몰아쳐가도 그대 너무 멀게 있읍니다. 그대 너무 멀어서 이 세상 물밀듯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립니다 그대가 빗발치게 그립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비가 내리니 조금은 차분해집니다 모두가 가라앉아서 흐르는 날이니, 자연스럽게 뜨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합니다 가벼움,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자신을 벗어나 일부러 멋부린 가벼움,..

2023.07.15

누구든 떠나갈 때는 /류시화

누구든 떠나갈 때는 /류시화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날이 흐린 날을 피해서 가자 봄이 아니라도 저 빛 눈부셔 하며 가자 누구든 떠나갈 때는 우리 함께 부르던 노래 우리 나누었던 말 강에 버리고 가자 그 말과 노래 세상을 적시도록 때를 용서하지 못하고 작별의 말조차 잊은 채로 우리는 떠나왔네 한번 떠나온 길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가자 지는 해 노을 속에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으며 가자.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느낌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소란스러움도, 넘실거리는 소용돌이도 없는 노을빛 바다, 물들어 가는 체험이 좋았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지구상에 있을까 합니다 세상이란 것에 잘 섞이지 않고 지키고 싶어하는 나라는 섬,,, 노을빛 아래서는 하나가..

2023.07.13

대관령 소나무숲길 트래킹

봄꽃 피는 날 / 용혜원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내 마음에 사랑나무 한그루 서 있다는 걸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내 마음에도 꽃이 활짝 피어나는 걸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그대가 나를 보고 활짝 피어나는 걸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그대가 나를 보고 활짝 웃고 있는 이유를 0,트래킹코스 : 어흘리주차장~삼포암폭포~솔숲교~숯가마~전망대~대통령쉼터~노루목이~솔숲교~원점휘귀 0,트래킹거리 : 약8km 0,트래킹시간 : 룰루랄라 4시간 0, 동행 : 홍성토요산악회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아쉽습니다 ㅠ 풍욕대에서 솔바람 맞고 하산합니다 휴양림 방향으로 내려왔습니다 폭포에서 물바람 맞습니다 점심 후 강릉 경포대에서 바닷바람으로 즐겼습니다 합창제 리허설은 덤으로,,,, 살아가는 과정을 통하여 ..

2023.07.09

멀리 있기 / 유안진

멀리 있기 / 유안진 멀리서 나를 꽃이 되게 하는 이여 향기로 나는 다가갈 뿐입니다. 멀리서 나를 별이 되게 하는 이여 눈물 괸 눈짓으로 반짝일 뿐입니다. 멀어서 슬프고 슬퍼서 흠도 티도 없는 사랑이여 죽기까지 나 향기 높은 꽃이게 하소서. 죽어서도 나 빛나는 별이게 하소서 살면서 참 많은 색채를 경험합니다 다채로운 색으로 변하는 자연을 보면 경이롭습니다 삶의 색도 여러가지 색으로 물들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풍요롭고 다채로움이 풍만한 삶이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23.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