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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 고정희
    2023. 7. 20. 20:54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 고정희

    언제부턴가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와도, 거기
    내 마음과 그대 마음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르는 세상

    불 그림자 멀리 멀리
    얼음장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
    가시철망 담벼락을 와르르 녹여
    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대 따뜻함에 내 쓸쓸함 기대거나
    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
    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 없다면
    곤륜산 가는 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
    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쓸쓸함과 내 따뜻함이
    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쓸쓸하여
    그대 따뜻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따뜻함과 내 쓸쓸함이
    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
    오 진실로 원하고 원하옵기는

    그대 가슴속에 든 화산과
    내 가슴속에 든 빙산이 제풀에 만나
    곤륜산 가는 길 트는 일입니다

    한쪽으로 만장봉 계곡물 풀어
    우거진 사랑 발 담그게 하고
    한쪽으로 선연한 능선 좌우에
    마가목 구엽초 오가피 다래눈
    저너기 떡취 얼러지나물 함께
    따뜻한 세상 한번 어우르는 일입니다

    그게 뜻만으로 되질 않습니다
    따뜻한 세상에 지금 사시는 분은
    그 길을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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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