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4114

보리밭 / 안도현

보리밭 / 안도현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내릴 수 없는 깃발이 있다는 뜻이다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땅 투기꾼 독점재벌에게는 도저히 빼앗길 수 없는 한 뼘의 분노가 있다는 뜻이다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밟아도 밟아도 되살아나는 희망 우리가 청춘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적에 대한 증오가 이렇듯 푸르고 동지에 대한 사랑이 이만큼 싱싱하다는 뜻이다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이 땅에 아직 보리피리를 찬란하게 불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군산 옥구의 보리밭을 걸었습니다 논보리이지만 오랫만에 누렇게 익어가는 모습이 정겨웠습니다

2023.06.02

비가 전하는 말 / 이해인

비가 전하는 말 / 이해인 밤새 길을 찾는 꿈을 꾸다가 빗소리에 잠이 깨었네 물길 사이로 트이는 아침 어디서 한 마리 새가 날아와 나를 부르네 만남보다 이별을 먼저 배워 나보다 더 자유로운 새는 작은 욕심도 줄이라고 정든 땅을 떠나 힘차게 날아오르라고 나를 향해 곱게 눈을 흘기네 아침을 가르는 하얀 빗줄기도 내 가슴에 빗금을 그으며 전하는 말 진정 아름다운 삶이란 떨어져 내리는 아픔을 끝까지 견뎌내는 겸손이라고 오늘은 나도 이야기하려네 함께 사는 삶이란 힘들어도 서로의 다름을 견디면서 서로를 적셔주는 기쁨이라고 신은 다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비오는 날에 들꽃들에게 아름다운 색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류시화 시인의 마음 챙김시 중에서 엘런 바스의 중요한 것은 이란 시의 한 부분이 생각납니다 삶을 사랑하는 것 도..

2023.05.28

생기 불어 넣는 비가 내립니다

오월의 아침 / 나태주 가지마다 돋아난 나뭇잎을 바라보고 있으려면 눈썹이 파랗게 물들 것만 같네요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려면 금세 나의 가슴도 바다같이 호수같이 열릴 것만 같네요 돌덤불 사이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듣고 있으려면 내 마음도 병아리 떼같이 종알종알 노래할 것 같네요 봄비 맞고 새로 나온 나뭇잎을 만져보면 손끝에라도 금시 예쁜 나뭇잎이 하나 새파랗게 돋아날 것만 같네요 행복한 삶은 도착지가 아니라, 지금 가는 길 위에 있다. 오늘도 사랑합시다 얼마전 다녀온 뒷간, 용봉산 올려 봅니다 그렇게 오랬동안 다녔어도 새롭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부처님의 가피가 온 세상에 퍼져서, 축복과 사랑, 감사가 넘쳐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도 조금은 나아지고,,,, 평범헌 인생에도 희망이 넘치길,,,, 비가 ..

2023.05.28

5월이 가기 전에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말 / 예민 아서 아서 꽃이 떨어지면 슬퍼져 그냥 이길을 지나가 심한 바람 나는 두려워 떨고 있어 이렇게 부탁 할께 아서 아서 꽃이 떨어지면 외로워 그냥 이길을 지나가 빗줄기는 너무 차가워 서러우니 그렇게 지나가줘 검은 비구름 어둠에 밀리면 나는 달빛을 사랑하지 이런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오 맑은 하늘과 밝은 태양 아래 나를 숨쉬게 하여주오 시간이 가기전에 꽃은 지고 시간은 저만큼 가네 작은 꽃씨를 남기고 길을 따라 시간을 맞이 하고 싶어 바람을 기다리네 검은 비구름 어둠에 밀리면 나는 달빛을 사랑하지 이런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오 맑은 하늘과 밝은 태양 아래 나를 숨쉬게 하여주오 시간이 가기전에 꽃은 지고 시간은 저만큼 가네 작은 꽃씨를 남기고 길을 따라 시간을 맞이 하고 싶어 바람..

2023.05.27

희망

인생의 비극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도달할 목표가 없다는 데에 있다. 꿈을 실현하지 못한 채 죽는 것이 불행이 아니라 꿈을 갖지 못한 것이 불행이다.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불행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해보려고 하지 않을 때 이것이 불행이다. 하늘에 있는 별에 으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별이 없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결코 실패는 죄가 아니며 오히려 목표가 없는 것이 죄악이다. (원래는 인도델리 사원의 벽에 영문으로 작가 이름도 없이 쓰여진 글이었다) 그대에게 별이 있는가? 별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꿈이나 비전이 되고 희망이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오늘에만 목을 매달고 사는 것이 아니요 내일에도 살고 내일의 꿈이나 희망을 가슴에 품고 ..

2023.05.21

마지막 여름 장미 / 최영미

마지막 여름 장미 / 최영미 길모퉁이에서 나는 보았지 먼지를 뒤집어쓴 장미 한 송이. 아, 어떻게 서울에 …… 스마트폰이 점령한 젊음의 거리에 늦게 핀 여름 장미가 나, 여기 살아 있다고 내 발목을 붙잡고 지금쯤 자취도 없이 사라진 어느 여름의 벼락같은 선물. 기억의 담벼락에 새겨진 희미한 이름이 꽃을 피우고 이파리를 흔들고, 흐린 하늘에 소나기가 내린다 네가 나의 마지막 여름 장미였지. 아니, 가을이었나? 내 품에 안긴 서른 송이의 장미꽃들은 어디로 갔나. 추억이여. 넌 어쩜 시들지도 않고 이렇게 아무 데서나 나타나 날 귀잖게 하니. 일상에서 서성이다 보니 장미가 피었습니다 지인들과 한 병 하다가 ''' 카메라 들고 다시 담 벼락으로 갔습니다 나만 생각하고 살아온 봄 입니다 장미는 삶을 회복시켜주려나 ..

2023.05.19

나의 가족 / 김수영

나의 가족 / 김수영 고색이 창연한 우리집에도 어느덧 물결과 바람이 신선한 기운을 가지고 쏟아져 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아침이면 눈을 부비고 나가서 저녁에 들어올 때마다 먼지처럼 인색하게 묻혀가지고 들어온 것 얼마나 장구한 세월이 흘러갔던가 파도처럼 옆으로 혹은 세대를 가리키는 지층의 단면처럼 억세고도 아름다운 색깔- 누구 한 사람의 입김이 아니라 모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 것 그것은 저 넓은 문창호의 수많은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겨울바람보다도 나의 눈을 밝게 한다 조용하고 늠름한 불빛 아래 가족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전영(全靈)을 맡긴 탓인가 내가 지금 순한 고개를 숙이고 온 마음을 다하여 즐기고 있는 서책은 위대한 고대 조각의 사진 그렇지만 구차한..

2023.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