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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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해인삶 2023. 2. 4. 12:33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해인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결움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봄에 들어선다는 뜻의 입춘(入春), 24절기의 첫번째 입니다 새 봄 행복하십시요 삶이 오르막이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시고, 혹시 내리막이시거든 더욱 홀가분 하십시요 이번 봄에는 마음으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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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의 가뭄산 2022. 6. 1. 23:50
흔적 남기기 / 강남주 한 마리 짐승이었다 나는 나무 등걸에 몸 부비며 비늘을 짓이기고 털을 붙이고 잡아먹을까 잡혀 먹힐까 살기를 다툼하면서 나만 챙겼다 산야를 달리고 또 달려 영역을 넓히겠다고 오줌 누고 이빨 내밀며 안간힘 했다 결국 흔적도 없어질 목숨인 것을 뭔가 남기려고 기를 썼지만 끝내 한 마리 짐승이었다 나는 오늘 아침의 기운으로 보면, 가정이 평화롭고, 행복하다 ㅋㅋ 사랑하는 아들은 헌혈을 하고, 딸은 휴일 근무를 떠나고,,,, 옆에 두고 싶어서 이러고 저러고,,, 주산지의 아침을 보려고 너무 이른 새벽에 떠났습니다 마음 가는대로 안되는 것, 가뭄으로 상상한 풍경은 없지만, 질리지 말라고 새로움을 보여 주네요 가슴으로 시작하고, 떠나는 봄 입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알지요 푹신 비에 젖은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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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지나오다산 2022. 5. 23. 21:40
풍경을 위로하다/임송자 사람들이 떠난 마을 운양리를 지나오다 아직 기척이 없는 개나리 몇 가지를 덜어냈다 봄을 좀 끌어당기고 싶었다 마을은 더 이상 유기적이지 못하고 빈 마당을 쓸고 있는 바람과 떠나지 못한 붉은 찔레 열매가 헛일처럼 적적하다 마른기침에 좋다는 그 열매를 따려는데 손등을 긁어대며 말을 거는 찔레 덤불에게 가능한한 애절하게'찔레꽃'을 불러주었다 가만 있으면 외로움이 밀려들기 때문일까 기울어진 문간은 열고 닫는 일을 잊지않으려는듯 있는 힘을 다해 삭은 무릎을 삐걱인다 집과 집 사이 제 할 일이 없어진 탱자나무 울타리는 늙은 퇴직자처럼 맥이 빠지고 부드럽고 둥근 경계를 대신하던 살구나무 목련도 허한 봄을 어찌 나눠 쓸까 걱정이다 추억은 먼데서 데려올수록 테두리가 선명하고 곱다고 했지 먼데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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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말농장 풍경 / 송미숙삶 2022. 4. 16. 10:53
봄날의 주말농장 풍경 / 송미숙 따스한 봄비로 차가움을 어루만져주고 농장 땅바닥에 핀 키 작은 이름 모를 꽃에는 꿀벌들이 예쁘게 노느라 바쁘구나 가끔씩 불어오는 봄 향기 담은 바람에 냉기는 있으나 추운 겨울을 이겨낸 키 작은 봄나물과 새싹은 새 생명의 기다림과 설레임을 느끼게 한다 흥겨운 노랫가락에 맞추어 호미 끝은 예쁘게 춤을 추고 꿀벌들은 꽃향기에 취한 듯 한 수 시를 을픈 듯 소리를 내고 창틀에 턱을 걸치고 옆 산을 바라본 봄 풍경은 새떼들이 소풍 가듯 대나무에 줄지어 사뿐히 내려앉는다 사랑하는 님과 같이 나란히 누워 한눈에 들어오는 봄 수채화를 보며 여유와 한해 시작의 봄 향기에 스르르 꿈나라로 집에 오는 길에 마주친 한 쌍의 고운 천사 같은 눈을 가진 고라니는 반가운 듯 밝게 웃어주듯 껑충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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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정해정삶 2022. 4. 14. 07:15
희망 / 정해정 웃음 띤 그대 미소는 분노를 잠재우고 지구가 멈추지 않는 이유는 사랑하는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무게가 때론 버거울 때도 그 사람 얼굴을 떠올립니다.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는 슬기로움이 되어 어두운 터널을 만난다 해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밤하늘에 뜬 수많은 별 그 중 유일한 별 하나 그게 바로 당신이랍니다. 매년 보러가는 용봉산 멋쟁이가 만개했습니다 작년에는 몇 송이 아피웠는데,,,, 춥고 긴 겨울을 멋지게 이겨냈습니다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창문을 열고, 봄비 내리는 풍경을 즐겨봅니다 힘든 시기를 지나갑니다 평화로움이 참 좋습니다 삶이 가져오는 무겁고, 복잡한 일들을 깊은 잠에서 깨어난 기분으로 기쁨을 발견합니다 덤으로 들리는 새소리가 잔칫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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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두고 싶은 순간 / 박성우삶 2022. 4. 11. 22:48
남겨두고 싶은 순간 / 박성우 시외버스 시간표가 붙어있는 낡은 슈퍼마켓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래된 살구나무를 두고 있는 작고 예쁜 우체국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유난 떨며 내세울 만한 게 아니어서 유별나게 더 좋은 소소한 풍경, 슈퍼마켓과 우체국을 끼고 있는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아 저기 초승달 옆에 개밥바라기! 집에 거의 다 닿았을 때쯤에야 초저녁 버스정류장에 쇼핑백을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돌아가 볼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으나, 나는 곧 체념했다 우연히 통화가 된 형에게 혹시 모르니, 그 정류장에 좀 들러 달라 부탁한 건, 다음날 오후였다 놀랍게도 형은 쇼핑백을 들고 왔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있었다는 쇼핑백, 쇼핑백에 들어있던 물건도 그대로였다 오래 남겨두고 싶은 순간이었다 용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