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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이향아

봄날은 간다 / 이향아 누가 맨 처음 했던가 몰라 너무 흔해서 싱겁기 짝이 없는 말 인생은 짧은 여름밤의 꿈이라고 짧은 여름 밤의 꿈같은 인생 불꽃처럼 살고 싶어 바장이던 날 누가 다시 흔들어 깨웠는지 몰라 강물은 바다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 실개천 흘러서 바다로 가는 길 엎드려 흐느끼는 나의 종교여, 나를 아직도 용서할 수 있는지. 꽃이 지는 봄, 땅 위에 물구나무 서서 영원의 바다 같은 하늘을 질러 나 이제 길을 떠나도 돌아올 수 있는지, 봄날은 간다. 탈없이 간다.

2014.04.10

개심사

저문 산에 꽃燈 하나 내걸다 - 손세실리아 산을 내려오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늙은 나무의 흰 뼈와 바람에 쪼여 깡치만 남은 샛길이 세상으로 난 출구를 닫아걸고 있습니다 아직은 사위가 침침하지만 곧 사방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들겠지요 그렇다고 산에 갇힐까 염려는 마세요 설마 그러기야 할라구요 또 그런들 어쩌겠어요 혹시 보이시는지 점자를 더듬는 소경처럼 빛이 아물어야만 판독 가능한 저 내밀한 것들의 아우성 말입니다 밤하늘을 저공 비행하는 반딧불이의 뜨거운 몸통과 흐르지 못하고 서성이는 시린 산그늘, 팥배나무 잎맥에 파인 바람의 지문과 억겁을 휘돌아 식물의 육신을 빌려 짓무른 환부를 째고 해산한 꽃잎 끈 눈물 같은 사리 한알 내 안의 오래된 상처도 푸르고 곱게 부식되어 다음 생엔 부디 이마 말간 꽃으로..

2014.04.08

슬픔이 기쁨에게-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슬품과 기쁨을 의인화하여..

2014.04.08

용비지

작년에는 찿아갔더니 꽃이 지고, 금년에는 꽃이 덜 피었네요 용비지 입니다 들어가면서 늘 죄송한 마음으로 가는 곳 중에 하나입니다 ------------------------------- 용비지는 아침인데 넘 늦은 저녁에 다녀왔습니다 물안개와 햇살이 조합되면 최고인데,,, 이 용비지는 농협한우개량사업소 구내에 있는데, 한우개량사업소는 우리나라 한우의 유전공학을 통한 개량을 연구하는 메카입니다 그래서 구제역 등 질병의 방제하기 위하여 통제를 합니다 오늘, 살그머니 가보니 개방을 하셨더군요? 횡재한 기분으로 다녀왔습니다 아침에 다녀오셔서 보내주신 프로님의 작품입니다 벚꽃은 만개하지는 않했더군요 담주에 온도가 올라가면 절정일듯 합니다 행복한 주말 저녁되세요

2014.04.06

산수유 꽃자락-박남준-

산수유 꽃나락 박 남 준 봄이 와도 아직은 다 봄이 아닌 날 지난 겨우내 안으로 안으로만 모아둔 햇살 폭죽처럼 터트리며 피어난 노란 산수유 꽃 널 보며 마음 처연하다 가을날의 들판에 툭툭 불거진 가재눈 같은 시름 많은 이 나라 햇나락 봄이 와도 다 봄이 아닌 날 산자락에 들녘에 어느 어느 이웃집 마당 한켠 추수 무렵 넋 놓은 논빼미의 살풍경 같은 햇나락 같은 노란 네 꽃 열매 그리 붉어도 시큼한 까닭 알겠어 산수유 꽃

2014.04.03

아픈 봄 저녁

기대어 울 수 있는 한가슴 / 이정하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더욱 필요한 것임을. 그대 만나고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대여 지금 어디 있는가. 보고싶다. 보고싶다. 말도 못할 만큼 그대가 그립습니다 서툰사랑 / 이정하 누군가를 만나면 겁부터 먹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의지와 달리, 지난 모든 상처 따위는 모른다는 듯, 또 요동치는 마음을 보며 지레 겁을 먹는 당신에게, 사랑 앞에서 또 서툴 거라며 발부터 빼는 당신에게, 안돼 사랑 놀음은! 하며 마음을 단속하는 당신에게, 그 마음을 그냥 방목하라고 당부하고 싶어서 많은 말들을 고르고 고른다. 들어봐. 당신은 어떠한 사랑에도 익숙할..

2014.04.01

4월 첫 아침을 열면서!

맑은 꽃 - 김 여정 - 눈물보다 더 맑은 꽃이 있을까 4월은 꽃이 많은 계절 4월은 눈물이 많은 계절 맑은 꽃 속의 샘물에 뜨는 별 예사로이 보면 안 보이는 별 별이 안 보이는 눈에는 눈물이 없지 사람들은 꽃만 보고 눈물은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샘물만 보고 별은 보지 않는다 광장에는 꽃의 분수 4월의 눈물이 솟는데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_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저의 조그만 공간을 방문하시는 아름다운 분들께..

2014.04.01

여운을 남기는 시를 읽으며

멀리서만 / 이정하 찾아 나서지 않기로 했다. 가기로 하면 가지 못할 일도 아니나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그리움 안고 지내기로 했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그대가 많이 변했다니 세월 따라 변하는 건 탓할 건 못되지만 예전의 그대가 아닌 그 낭패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멀리서 멀리서만 그대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이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 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

2014.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