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192

눈부신 세상 / 나 태 주

꽃이 되어 새가 되어 / 나태주 지고 가기 힘겨운 슬픔 있거든 꽃들에게 맡기고 부리기도 버거운 아픔 있거든 새들에게 맡긴다 날마다 하루 해는 사람들을 비껴서 강물 되어 저만큼 멀어지지만 들판 가득 꽃들은 피어서도 붉고 하늘가로 스치는 새들도 본다 겨울행(行) / 나태주 열살에 아름답던 노을이 마흔살 되어 또다시 아름답다. 호젓함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이란 걸 알게 되리라. 들판 위에 추운 나무와 집들의 마을, 마을 위에 산, 산 위에 하늘, 죽은 자들은 하늘로 가 구름이 되고 언 별빛이 되지만 산 자들은 마을로 가 따뜻한 등불이 되는 걸 보리라.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대숲바람 소리 / 나태주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남의 집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 밤사이 내려와 놀던 초록별들의 퍼렇게 멍든 날개쭉지가 떨어져 있..

2015.10.05

목마와 숙녀(木馬와 淑女) / 박인환 시

목마와 숙녀(木馬와 淑女) / 박인환 시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2015.09.24

그대가 있기에 행복합니다 / 원종린

그대가 있기에 행복합니다 / 원종린 어떤 일을 하다가도 문득 머리를 스치는 그대라는 이름앞에 행복을 느낍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작은 것 하나에도 그대의 세밀한 손길이 느껴져 행복을 느낍니다. 숨을 쉬는 것 살아 움직이는 것 내가 존재한다는 것 이 모든 것에 행복을 느끼는 건 그대가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움에 눈물 흘리고 사랑에 가슴 뜨거워지고 기쁨에 희열을 느끼고 슬픔에 마음 아파하는 건 행복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내 안에 있기에 행복도 내 안에 있습니다. 잠시 꽃지에 들렸다 오면서 오늘은 날씨도 청명하고, 바람도 있으니 멋진 일몰이 있으리란 기대를 안고 왔다 지난 1년을 신축 공사에, 업무시스템 구축에, 이런저런 일에 시간을 보냈다 참 시간이 빠르다 논에는 이미 황금물결..

2015.09.08

더운 날 개구리도 꽃그늘에서 쉽니다!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천리포수목원에서) ..

2015.08.14

그리움!!

그리움 1 / 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어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찿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긴 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그리움 / 정운(丁芸) 이영도 생각을 멀리하면 잊을 수도 있다는데 고된 살음에 잊었는가 하다가도 가다가 월컥 한 가슴 밀고 드는 그리움.

2015.08.12

무제(無題)·1/이영도

무제(無題)·1/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기울여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窓)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집 앞 화단에 핀 노랑장미 입니다 핸펀으로 조명을 비추고 겔노트로 촬영을 했습니다 가뭄에 핀 장미라서 좀, 늙은 느낌! 눈물이 고일 정도로 찡한 저녁되세요!!!

2015.08.05

질투는 나의 힘/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사랑, 그대 색깔로 물드는 것!

2015.08.05

연꽃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목련 후기 / 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 하다고 말 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 거리는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 돌아서는지 못 하겠다 구름에 달처럼 가지는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 했으므로 사랑해 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 지라도 낫지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 더 앓고 싶어라 (궁남지에서) 아무래도 인간은 그다지 현명하지도 의지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멋지게 떠나는 것까지 바..

201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