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192

낙 화 / 이형기

낙 화 /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궁남지에서,,,,)

2015.07.21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 가겠다 비가 내립니다 시인은, 슬픔을 모르는 이에게 슬픔을 선물해서 아품을 알고, 사랑하도록 하고 싶었을까? ..

2015.07.19

가난한 사랑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혜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가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을 보고싶소 수 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나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남덕유에서,,,,) 영화 시월애에..

2015.07.18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해탈의 경지를 알고 싶으면 물풀을 보라 물풀은 화사한 꽃으로 물벌레들을 유인하지 않고,달콤한 열매로 물벌레들을 유인하지도 않는다 봄이면 연둣빛 싹으로 돋아나서 여름이면 암록빛 수풀로 무성해지고, 가을이면 다갈색 아품으로 흔들리다 겨울이면 조용히 스러지는 목숨, 그러나 물풀은 단지 물살에 자신의 전부를 내맡긴..

2015.06.29

풀 / 김수영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안면도 밧개 해수욕장) 황동규, 「시의 소리」 여기서 우리가 풀을 민중의 상징이고 바람, 특히 ‘비를 몰아오는 동풍’은 외세의 상징이라는 식의 의미를 부여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의미를 붙이게 되면 비를 몰아오는 바람을 풀이 싫어할 리가 없다는 생물 생태학적인 반론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람보다 동작을 ‘빨리’, ‘먼저’ 한다고 해..

2015.06.28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사랑 / 정호승 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기쁨 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는 기도 내 영혼이 가난 할 때 부르는 노래 모든 시인들이 죽은 뒤에 다시 쓰는 시 모든 애인들이 끝끝내 지키는 깨끗한 눈물 오늘도 나는 그대를 사랑하는 날보다 원망하는 날들이 더 많았나니 창밖에 가난한 등불 하나 내어 걸고 기다림 때문에 그대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를 기다리나니 그대는 결국 침묵을 깨뜨리는 침묵 아무리 걸어가도 끝없는 새벽길 새벽 달빛 위에 앉아 있던 겨울산 작은 나뭇가지 위에 잠들던 바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사막의 마지막 별빛 언젠가 내 가슴 속 봄날에 피었던 흰 냉이꽃.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읺는다. ..

2015.06.26

동 행 / 김재진

동 행 / 김재진 절망이 내게 문자를 보낸다 나는 절망의 메세지를 읽는다 불안이 내게 문자를 보낸다 나는 불안이 보낸 메세지를 읽는다 읽고 버린다 그대의 암은 그대의 두령움이 그대에게 보낸 문자 그대의 모든 상처와 그대의 모든 병은 그대의 소외와 그대의 공포가 그대에게 보낸 문자 그들이 보낸 메세지를 우리는 해독 할 수 없다 기쁨과 고통이 함께 우리의 동반자지만 우리는 그들의 동행을 이해할 수 없다 상처와 치유가 함께 우리의 동반자지만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느 날 설악산 공룡능선을 지나다가 보았습니다 여름이 왔으니 다시 그 길로 가보렵니다

2015.06.26

사랑하는 이유 / 이정하

사랑하는 이유 / 이정하 그대 내게 왜 사랑하는가 묻지 마십시오. 내가 그대를 사랑함에 있어 별다른 까닭이 있을 수 없습니다.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듯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그대 내게 왜 사랑하는가 묻지 마십시오.공기가 있으니 호흡을 하듯 내가 그대를 사랑함에 있어별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저 그대가 좋으니 사랑할 밖에.그저 그대가 사랑스러우니 사랑할 밖에   꽃잎의 사랑 .... 이정하 내가 왜 몰랐던가,당신이 다가와 터뜨려 주기 전까지는꽃잎 하나도 열지 못한다는 것을.당신이 가져가기 전까지는내게 있던 건 사랑이 아니니내 안에 있어서는사랑도 사랑이 아니니아아 왜 몰랐던가,당신이 와서야 비로소 만개할 수 있는 것.주지 못해 고통스러운 그것이 바로사랑이라는..

2015.06.23

노래 / 김재진

노래 / 김재진 떠오르는 그 순간 말하라 늦지 않도록 내 마음속에 그대가 있다고 말하라 버려도 버려도 내 안을 맴도는 버릴 수 없는 단 한각지가 있다고 말하라 늦지 않도록 말하라 바람을 타고 흘러가 어젯밤 내가 부르던 노랫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기 전에 그 산에 다시 갈 수 있을까? / 김재진 사랑하지 않기 위해 사랑을 감추고 마음 아프지 않기 위해 마음을 감추고 더 이상 감출 것 없는 생의 끝에서 끊어진 울음 따라 마음 누르는 내가 숨 가쁜 탄식이라면 오래된 탄식이 만날 침묵이라면 내가 바친 기도는 메마른 숲 아무것도 더 해 볼 수 없어 울음 누를 때 늦도록 꽃 못 피운 산이라네

201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