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시 136

소포 / 이성선

소포 / 이성선 가을 날 오후의 아름다운 햇살아래 노란 들국화 몇 송이 한지에 정성들여 싸서 비밀히 당신에게 보내드립니다 ​ 이것이 비밀인 이유는 그 향기며 꽃을 하늘이 피우셨기 때문입니다 ​ 부드러운 바람이 와서 눈을 띄우고 차가운 새벽 입술위에 여린 이슬의 자취 없이 마른 시간들이 쌓이어 산 빛이 그의 가슴을 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이것을 당신에게 드리는 정작의 이유는 당신만이 이 향기를 간직하기 가장 알맞은 까닭입니다 한지같이 맑은 당신 영혼만이 꽃을 감싸고 눈물처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 하늘이 추워지고 세상의 꽃이 다 지면 당신 찾아가겠습니다 가을 산에 폭포의 물소리,,,, 고요한 숨소리 같았습니다 오색 단풍들고, 갈바람 지나는 길목입니다 삶속에 애절한 그리움이 빛으로 지는 시간,,,!..

2022.10.22

서성인다 / 박노해​

서성인다 / 박노해 ​ 가을이 오면 창밖에 누군가 서성이는 것만 같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아무도 없어 그만 방으로 들어와 나 홀로 서성인다. ​ 산뜻한 가을바람이 서성이고 맑아진 가을볕이 서성이고 흔들리는 들국화가 서성이고 ​ 가을편지와 떠나간 사랑과 상처난 꿈들이 자꾸만 서성이는 것만 같다. ​ 가을이 오면 지나쳐 온 이름들이 잊히지 않는 얼굴들이 자꾸만 내 안에서 서성이는 것만 같다. 소주 마시고 걸어서 집으로 오는 길, 생각에, 내가 노래하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2022.10.20

가을에는 / 최영미

가을에는 / 최영미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 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 하는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 가을비가 여름날 폭우처럼 내렸습니다 가을을 재촉하나 ..

2022.10.04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 나태주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 나태주 인생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는 사람 없고 인생이 무엇인가 정말로 알고 인생을 사는 사람 없다 어쩌면 인생은 무정의용어 같은 것 무작정 살아보아야 하는 것 옛날 사람들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앞으로도 오래 그래야 할 것 사람들 인생이 고달프다 지쳤다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가끔은 화가 나서 내다 버리고 싶다고까지 불평을 한다 그렇지만 말이다 비록 그러한 인생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조금쯤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닐까 인생은 고행이다!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있다 우리 여기서 ‘고행’이란 말 ‘여행’이란 말로 한번 바꾸어보자 인생은 여행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너와 함께라면 인생은 얼마나 가슴 벅찬 하루하루일 것이며 아기자기 즐겁고 아름다운 발길일 거냐 너도 부디 나와..

2022.09.28

오래된 가을 / 천양희

오래된 가을 / 천양희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 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 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이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 세상 일에 욕심이 끝이 없다 놀러 가서도 그렇지,,,, 이 정도면 됐다,,,,!

2022.09.18

가을 /김현승

가을 /김현승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깍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寶石)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비 내리는 날, 고딩시절 걷던 골목길에서 흐러나오던 LP판 피아노곡이 듣고 싶어진다 지금은 없어진 맥심다방도 생각나네,,,,

2022.09.04

가을 우체국 / 문정희

가을 우체국 / 문정희 가을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다가 문득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시인보다 때론 우체부가 좋지 많이 걸을 수 있지 재수 좋으면 바닷가도 걸을 수 있어 은빛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낙엽 위를 달려가 조요로운 오후를 깨우고 돌아오는 길 산자락에 서서 이마에 손을 동그랗게 얹고 지는 해를 한참 바라볼 수 있지 시인은 늘 앉아만 있기 때문에 어쩌면 조금 뚱뚱해지지 가을 우체국에서 파블로 아저씨에게 편지를 부치다가 문득 시인이 아니라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시가 아니라 내가 직접 크고 불룩한 가방을 메고 멀고먼 안달루시아 남쪽 그가 살고 있는 매혹의 마을에 닿고 싶다고 생각한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맑은 인연이 그립다는 시인의 노래처럼,,,, 조금은 더 차분해집니다 내 마음의 정원에..

2022.08.29

숲을 지나오다 / 김수영

숲을 지나오다 / 김수영 참나무와 졸참나무의 숲입니다 나뭇진이 흐르던 자리 (상처 없는 영혼도 있을까요) 가을이 오면 그 나무의 단풍이 많겠지요 오솔진 숲으로 흐르는 여름 해의 눈부신 역광 발효한 빛의 향기가 헤매이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꿀에 취해 더러운 흙에서 나서 죽을 때까지 쓸쓸하여 허기지는 것들 가을까지라면 더욱 무겁겠지요 푸른 채 떨어진 나뭇잎과 굳어가는 나무 줄기 잘 구워진 깊은 우물 같은 마음의 맨 밑바닥에서 벗겨낸 한 두름의 그늘은 그 그늘이 된 자리에서 더 낮은 곳으로 쟁쟁히 울립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있을까요 살면서 오래 아파함도 기쁨이겠지요 가을이 진정 아름다은 건 눈물 가득 고여오는 그대가 있기 때문이리 (이해인, 가을이 아름다운 건 중에서)

2021.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