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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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 이정하 -삶 2014. 3. 25. 23:23
꽃 잎 / 이 정하 그대들 영원히 간직하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어쩌면 그대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쓸데없는 집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를 사랑한다는 그 마음마저 버려야 비로소 그대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음을. 사랑은 그대를 내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훌훌 털어버리는 것임을, 오늘 아침 맑게 피어나는 채송화 꽃잎을 보고 나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꽃잎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햇살을 받치고 떠 있는 자줏빛 모양새가 아니라 자신을 통해 씨앗을 잉태하는, 그리하여 씨앗이 영글면 훌훌 자신을 털어버리는 그 헌신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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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 박노해 -산 2014. 3. 25. 23:22
진달래 - 박노해 - 겨울을 뚫고 왔다 우리는 봄의 전위 꽃샘추위에 얼어 떨어져도 봄날 철쭉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외로운 겨울 산천에 봄불 내주고 시들기 위해 왔다 나 온몸으로 겨울 표적되어 오직 쓰러지기 위해 붉게 왔다 내 등뒤에 꽃피어 오는 너를 위하여 현실에서 보란 듯이 이루어낸 지난날 뜨거웠던 친구들을 보면 해냈구나 눈시울이 시큰하다 이런 중심 없는 시대에는 세상과의 불화를 견디기도 어렵겠지만 세상과의 화해도 그리 쉽지만은 안겠지 지금도 난 세상과 불화 중이지만 나 자신과는 참 고요하고 따뜻해 그래서 다시 길 떠나는가 봐 세상과의 화해가 자신과도 화해일 수 있다면 세상과 화해한 넌 지금 너 자신과 화해가 되니? 활짝 핀 진달래꽃을 보면서 봄을 즐깁니다 아름다운 시 한편 감상하시죠! 편안한 저녁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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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잎의 여자 -오규원-삶 2014. 3. 21. 08:27
한잎의 여자 - 오규원 -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 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물푸레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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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난한 연인이었을 때-이근화카테고리 없음 2014. 3. 17. 15:30
우리가 가난한 연인이었을 때 - 이근화 - 시커멓게 볶은 오뎅과 쭈글쭈글 조려진 꽈리고추로 밥을 먹었다 숟가락 젓가락 하나씩 나눠 들고 못생긴 감자를 파먹었다 우리가 가난한 연인이었을 때 푸른 곰팡이 붉은 곰팡이도 꽃이었다 아무 데서나 마음이 꺾였고 은화를 줍듯 공들여 걸었다 긴 겨울밤을 자전거로 달렸다 쉭쉭 황소 같은 숨을 멈추고 얼음장을 들어 올렸다 두 손을 어찌할 줄 몰랐다 우리는 계속 가난한 연인이었고 돌아가는 바퀴가 우습고 질겼으며 출몰하는 다람쥐가 모두 새끼였다 가여웠다 쓰라렸다 우리가 가난한 연인으로서 별을 서로 만나게 했을 때 보라색 구름을 이어 붙일 때 골목길에서 딱딱한 어둠을 차버렸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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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사랑은 언제나 마지막이었다 - 박주택-산 2014. 3. 17. 06:09
내게 사랑은 언제나 마지막이었다 - 박주택 - 나의 사랑도 절정으로 치달아 여름이 여름답고 꽃이 꽃다웠지만 저무는 나무 그림자 사이로 오는 저녁처럼 어둠도 어둠에 지쳐 아침을 기다린다 나를 따르는 풍경이며 말들이 나의 눈빛에 물들어 아름다웠을지라도 그 역시 내게 태어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네 어두운 겨울 얼음도 문을 닫고는 언 자신에게 눈독 들이는 겨울 내게 사랑을 베푼 것이 사랑 때문만이 아니라 내게서 뿜어대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도 아네 내게 사랑이라고 가르친 많은 것들이 지쳐 돌아가 남은 온기로 몸을 녹이고 있는 밤 나는 작별이 풍기는 향기에 감겨 커튼을 젖히고는 밖에다 사그라지는 나를 훤히 내놓네 이렇게 죽을 수도 있고 이렇게 살 수도 있다고 2014. 03.16 용봉산 용봉폭포에서,,,, 고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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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사랑 -도종환 -산 2014. 3. 15. 16:30
혼자사랑 - 도종환 - 그대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그대와 조금 더 오래 있고 싶어요 크고 작은 일들을 바쁘게 섞어가며 그대의 손을 잡아보고 싶어요 여섯 속에 섞여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러다가 슬그머니 생각을 거두며 나는 이것이 사랑임을 알아요. 꽃이 피기 전 단내로 뻗어오르는 찔레순 같은 오월 아침 첫 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같은 이것이 사랑임을 알아요. 그러나 나의 사랑이 그대에게 상처가 될까봐 오늘도 말 안하고 달빛 아래 돌아와요. 어쩌면 두고 두고 한번도 말 안하고 이렇게 살게되지 생각하며 혼자서 돌아와요. 2013년 세석 2013년 제석봉 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