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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의 상념 / 조미경

휴일의 상념 / 조미경 일주일을 쉼 없이 달리다 잠시 멈추어 서서 되돌아보는 휴일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 일터를 떠나 집안에 앉으니 무기력한 공기가 집안을 떠돈다 책을 펴 들고 글자의 움직임에 눈동자가 끊임없이 춤추고 춤추는 시선에 묵직한 피로 축 늘어진 나신을 넌즈시 바라보는 벽시계 철 지난 째깍 소리의 한숨 무상무념에 빠진 나그네를 가엾게 바라보고 있는 창틈으로 들어온 공기 한 줌. 만보 걷기를 수년째 하고 잇습니다 처음에는 살을 줄 일 목적으로 시작해서,,,, 경쟁심에 근저막념이 생기도록 걷고 걷고, 매월 1년 기준으로 5백만보를 걷고,,,, 다른 일을 못하고, 다른 시간을 줄이는 것,,,, 남는 것은 없습니다 금년부터는 제가 가진 것,,,, 건강, 체력,,,,, 등을 재음미 하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

2023.07.22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 고정희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 고정희 언제부턴가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와도, 거기 내 마음과 그대 마음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르는 세상 불 그림자 멀리 멀리 얼음장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 가시철망 담벼락을 와르르 녹여 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대 따뜻함에 내 쓸쓸함 기대거나 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 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 없다면 곤륜산 가는 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 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쓸쓸함과 내 따뜻함이 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쓸쓸하여 그대 따뜻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따뜻함과 내 쓸쓸함이 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 ..

2023.07.20

다시 아침 / 도종환

다시 아침 / 도종환 내게서 나간 소리가 나도 모르게 커진 날은 돌아와 빗자루로 방을 쓴다 떨어져 나가고 흩어진 것들을 천천히 쓰레받기에 담는다 요란한 행사장에서 명함을 잔뜩 받아온 날은 설거지를 하고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찬물에 차르를 차르를 씻겨나가는 뽀얀 소리를 듣는다 앞차를 쫓아가듯 하루를 보내고 온 날은 초록에 물을 준다 꽃잎이 자라는 속도를 한참씩 바라본다 다투고 대립하고 각을 세웠던 날은 건조대에 널린 빨래와 양말을 갠다 수건과 내복을 판판하게 접으며 음악을 듣는다 가느다란 선율이 링거액처럼 몸 속으로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는 걸 느끼며 눈을 감는다 인생은 자전거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페달로 뒷바퀴를 돌리는 것은 나 자신이지만, 핸들로 앞바퀴의 방향을 정하고,,,, 앞으로 가는 것은 눈으로..

2023.07.20

죽도록 사랑했기에 / 최수월

죽도록 사랑했기에 / 최수월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찢어질 듯한 가슴 안으로 누르지 못하는 아픔이 스며들어 못다 한 사랑 어쩔 수 없이 이젠 서서히 이별로 받아들이지만 백년이 흐르고 천년이 흘러도 어찌 널 놓을 수 있을까. 너와 나 헤어져 강산이 수없이 변한다 하여도 진정 놓을 수 없어 가슴 아프고 아픈 가슴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릴 테지만 이젠 너의 곁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슬픔인데 네가 그리울 때마다 너를 죽도록 사랑하는 나 어떡하면 좋을까. 이렇게 그리워 가슴 아픈데 어떡하면, 어떡하면 좋을까. 죽어서도 널 놓을 수 없는 사랑인 것을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갚을 수가 없습니다

2023.07.17

내가 원하던 삶을 살고 있지 않더라도 / 도종환

내가 원하던 삶을 살고 있지 않더라도 / 도종환 꽃나무라고 늘 꽃 달고 있는 건 아니다. 삼백예순닷새 중 꽃 피우고 있는 날보다 빈 가지로 있는 날이 훨씬 더 많다. 행운목처럼 한 생에 겨우 몇번 꽃을 피우는 것들도 있다. 겨울 안개를 들판 끝으로 쓸러내는 나무들을 바라보다 나무는 빈 가지만으로도 아름답고 나무 그 자체로 존귀한 것임을 생각한다. 우리가 가까운 숲처럼 벗이 되어주고 먼 산처럼 배경 되어주면 꽃 다시 피고 잎 무성해지겠지만 꼭 그런 가능성만으로 나무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빈 몸 빈 줄기만으로도 나무는 아름다운 것이다. 혼자만 버림받은 듯 바람 앞에 섰다고 엄살떨지 않고 꽃 피던 날의 기억으로 허세부리지 않고 담담할 수 있어서 담백할 수 있어서 나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꽃나..

2023.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