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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 / 이해인

겨울바다 / 이해인 내 쓸모없는 생각들이 모두 겨울 바닷속으로 침몰해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일 때 바다를 본다 ​ 누구도 사랑하기 어려운 마음일 때 기도가 되지 않는 답답한 때 ​ 아무도 이해 못 받는 혼자임을 느낄 때 나는 바다를 본다. ​ 참 아름다운 바다 빛 하늘빛 하느님의 빛 ​ 그 푸르디푸른 빛을 보면 누군가에게 꼭 편지를 쓰고 싶다 ​ 사랑이 길게 물 흐르는 바다에 나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정합니다 어느 순간에는 가장 흥청망청 쓰는 것이기도 합니다 태양이 뜨기 전에 가장 어둡고, 빛이 없듯이,,,, 동지 절기를 지나면서, 태양은 다시 양기를 품기 시작한답니다 지루할 틈이 없는 삶을 소망합니다

2023.12.22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 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시간 참 빠릅니다 미안하다고,,,, 사랑하다고 ,,,, 감사하다고,,, 아직 말하지 못했는데, 연말로 달려 갑니다 내가 가진 것만 소중히 생각했던 사람, 나 좀 욕심이 작아져 가면서 살아가는 내가 되기를 ,,,

2023.12.17

겨울 사랑 / 박노해

겨울 사랑 /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바다는 자신을 그대로 내보인다 우리의 인생도 똑같다 필요 이상으로 숨길 필요도, 꾸밀 필요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보이며 나아가면 된다 ---- 이주영, 모든 삶은 흐른다 중에서 --- 눈이..

2023.12.16

눈 내리는 날 동네 산책

겨울 노래 / 마종기 눈이 오다 그치는 나이 그 겨울 저녁에 노래 부른다 텅 빈 객석에서 눈을 돌리면 오래 전부터 헐벗은 나무가 보이고 그 나무 아직 웃고 있는 것도 보인다 내 노래는 어디서고 끝이 나겠지 끝나는 곳에는 언제나 평화가 있었으니까 짧은 하루가 문 닫을 준비를 한다 아직도 떨고 있는 눈물의 몸이여 잠들어라 혼자 떠나는 추운 영혼 멀리 숨어 살아야 길고 진한 꿈을 가진다 그 꿈의 끝막이 빈 벌판을 헤매는 밤이면 우리가 세상의 어느 애인을 찾아내지 못하랴 어렵고 두려운 가난인들 참아내지 못하랴 상추밭에 소복합니다 철지난 꽃밭에도,,,, (이응노화백 생가지) 밤새 시골집 창문이 덜렁거리고, 바람 소리가 났습니다 불을 끄면 조용한 세상이 시골인지라, 바람소리도 친구가 됩니다 아침부터 힌눈이 쌓이기 ..

2023.12.16

완행열차 / 허영자

완행열차 / 허영자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한 겨울인데,,,, 여름처럼 비가 내립니다 혹시 봄이 금방 오려봅니다

2023.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