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
인연의 잎사귀 / 이해인삶 2022. 7. 19. 20:44
인연의 잎사귀 / 이해인 수첩을 새로 샀다 원래 수첩에 적혀있던 것들을 새 수첩에 옮겨 적으며 난 조금씩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어느 이름은 지우고 어느 이름은 남겨 둘 것인가 그러다가 또 그대 생각을 했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이 묻혀지고 잊혀진다 하더라도 그대 이름만은 내 가슴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언젠가 내가 바람 편에라도 그대를 만나보고 싶은 까닭이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이 있겠지만 그대와의 사랑, 그 추억만은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까닭이다 두고두고 떠올리며 소식 알고픈 단 하나의 사람 내 삶에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 남겨준 사람 슬픔에서 벗어나야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 그대에게 벗어나 ..
-
빗방울이 두드리고 싶은 것 / 남정림삶 2021. 7. 6. 22:13
빗방울이 두드리고 싶은 것 / 남정림 빗방울은 꽃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싶어 구름의 절벽에서 떨어져 지구로 달려온다 빗방울은 어두운 대기에 둥근 희망의 사선을 그으며 투명하게 다가선다 빗방울이 무지개우산을 두드리면 빛망울은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린다 꽃의 가슴으로 달려가 안기고 만다 불행은 행복이라는 이름의 나무 밑에 드리워져 있는 그 나무 만한 크기의 그늘이다 인간이 불행안 이유는 그 그늘까지를 나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이외수 감성사전 중에서 --
-
바람의 말 / 마종기삶 2020. 7. 15. 18:59
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나, 그대와 함께 했던 그때만이 오직 존재할 것이다
-
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삶 2020. 6. 19. 19:10
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 그대에게 가고 싶다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 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으로 하나로 무잔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서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 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스한 이불..
-
봄비에게 길을 묻다 / 권대웅삶 2020. 5. 30. 10:39
봄비에게 길을 묻다 / 권대웅 봄비 속을 걷다 어스름 저녁 골목길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담장 너머 휘파람 소리처럼 휙휙 손을 뻗어 봄비를 빨아들이는 나뭇가지들 묵은 살결 벗겨내며 저녁의 몸바꿈으로 분주한데 봄비에 아롱아롱 추억의 잔뿌리 꿈틀거리는 내 몸의 깊은 골목은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 저녁 여섯 시에 퍼지는 종소리는 과거 현재 미래 한데 섞이고 비의 기억 속에서 양파냄새가 나 빗줄기에 부푼 불빛들 창문에 어른거리는 얼굴들 얼룩져 봄비에 용서해야 할 것이 어디 미움뿐이랴 잊어야 할 것이 사람뿐이랴 생각하며 망연자실 길을 잃다 어스름 저녁 하늘의 무수한 기억 기억 속으로 떨어지는 종아리 같은 저 빗물들 봄비에 솟아나는 생살들은 아프건만 마음에 비가 내리는 날, 추억을 찿아서 걷습니다 느낄 수 있습니다 그..
-
사랑 / 박형진삶 2019. 7. 6. 14:55
사랑 / 박형진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 있음의 제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 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이응노화백 생가지 연꽃 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