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769

인연 서설(敍說) / 문병란

인연 서설(敍說) / 문병란 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나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것은 그렇게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물을 찿는 뿌리를 안으로 감춘 채 원망과 그리움을 불길로 건네며 너는 나의 애달픈 꽃이 되고 나는 너의 서러운 꽃이 된다 사랑은 저만치 피어있는 한송이 풀꽃 이 애틋한 몸짓 서로의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가지며 가진 것 하나씩 잃어가는 일이다 각기 다른 인연에 한 끝에 서서 눈물에 젖은 정한 눈빛 하늘거리며 바람결에도 곱게 무늬지는 가슴 사랑은 서로의 눈물 속에 젖어가는 일이다 오고가는 인생길에 애틋이 피어났던 너와 나의 애달픈 연분도 가시덤불 찔레꽃으로 어루러지고 다하지 못한 그리움 사랑은 하나가 되려나 마침내 부서진 가슴 핏빛 노을로 타오르나니 이 밤도 파도는 밀려와 잠 못 드..

2021.03.11

한계선/박노해

한계선/박노해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더는 나아갈 수 없다 돌아서고 싶을 때 고개들어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라. 여기서 돌아서면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너는 도망치게 되리라. 여기까지가 내 한계라고 스스로 그어버린 그 한계선이 평생 너의 한계가 되고 말리라.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그만 금을 긋고 돌아서고 싶을 때 묵묵히 황무지를 갈아가는 일소처럼 꾸역꾸역 너의 지경을 넓혀가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하루의 시간,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 이라고 부릅니다 선물같은 나의 하루를 행복이 반짝이길 소망합니다

2020.12.13

아름다운 길 / 도종환

아름다운 길 / 도종환 너는 내게 아름다운 길로 가자 했다 너와 함께 간 그 길에 꽃이 피고 단풍 들고 길 옆으로 영롱한 음표들을 던지며 개울물이 흘렀지만 겨울이 되자 그 길도 걸음을 뗄 수 없는 빙판으로 변했다 너는 내게 끝없이 넒은 벌판을 보여달라 했다 네 손을 잡고 찾아간 들에는 온갖 풀들이 손을 흔들었고 우리 몸 구석구석은 푸른 물감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빗줄기가 몰아치자 몸을 피할 곳이 없었다 내 팔을 잡고 놓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넘어질 때 너도 따라 쓰러졌고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세찬 바람 불어올 때마다 너도 그 바람에 꼼짝 못하고 시달려야 했다 밤새 눈이 내리고 날이 밝아도 눈보라 그치지 않는 아침 너와 함께 눈 쌓인 언덕을 오른다 빙판 없는 길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며 함께 꽃잎 같은 ..

2020.06.15

뜨거운 편지/ 김현태

뜨거운 편지/ 김현태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그대 마음 얻을까, 고민하다가 연습장 한 권을 다 써버렸습니다 이렇게 침이 마르도록 고된 작업은 처음입니다 내 크나큰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글이란 것이 턱없이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부엌에서 보리차가 끓고 있습니다 보리차가 주전자 뚜껑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문틈으로 들어 온 보리차 냄새가 편지지 위에서 만년필을 흔들어 댑니다 사랑합니다, 란 글자 결국 이 한 글자 쓰려고 보리차는 뜨거움을 참았나 봅니다 그대와 나의 관계는 내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 칼린 지브란 --

2020.01.16

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2019.12.19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 정 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 정 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은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제4시집 《이 시대의 아벨》(문학과 지성사, 1983) 기적이 일어나라 간절한 나의 마음이 담긴 만큼,,,!

2019.12.12

간월도 풍경 / 한휘준

간월도 풍경 / 한휘준 천수만 간월도에서 매운 어리굴젓이랑 광어회를 맛있게 먹다가 그녀 생각에 핑 눈물이 났다 아니야- 울며 겨자 먹기라 하였던가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나는 것은 매운 겨자 탓이라 하였었지 그대 목이 메인 그리움에 우럭 매운탕을 먹다가 끝내 , 목구멍에 가시가 걸렸다 그래 , 다가오다 먼발치에서 섬이 되어 버린 삼킬 수 없는 가시 같은 목 메인 그리움 흔들리는 파도에 씻겨 늘 푸른 울음 우는 너의 목소리였지 나는 처음 먹는 우럭 매운탕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 그만 말하고 말았지 바람이 먼 곳에서 불어왔다 파도가, 물결이 걸작을 만들어 낸다 모래언덕에 가을이 왔다 바람에 흩어지고, 모이는 사구 언덕 쌓이고, 흘러 내리면서 긴 역사를 만들어내는 현장, 간월암을 바라보며 저 앞에 느티나무가 물..

2019.10.11

비행기 타고 혼자 놀기

낮설고 거친 길,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려도 물어가면 그만이다 물을 이가 없다면 헤매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적지를 절대 잊지 않는 것이다 --- 1그램의 용기 중, 한비아 --- 여행의 격한 기쁨에서 돌아와 나의 문 앞에, 나의 거울 앞에 선 나는 나 자신을 반길 것이다 나와 내안의 내가 보내는 교감에 미소를 짓을 것이다 여행의 기쁨이자 묘미가 아닐까,,,!

2019.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