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이야기 138

붉은 잎/류시화

붉은 잎 / 류시화 그리고는 하루가 얼마나 길고 덧없는지를 느끼지 않아도 좋을 그 다음 날이 왔고 그 날은 오래 잊혀지지 않았다. 붉은 잎, 붉은 잎 하늘에 떠가는 붉은 잎들 모든 흐름이 나와 더불어 움직여 가고 또 갑자기 멈춘다 여기 이 구름들과 끝이 없는 넓은 강물들 어떤 섬세하고 불타는 삶을 나는 가지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졌었다. 그렇다,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하찮았던가! 여기 이 붉은 잎, 붉은 잎들 허공에 떠 가는 더 많은 붉은 잎들 바람도 자고 물도 맑은 날에 나의 외로움이 구름들을 끌어당기는 곳 그것들은 멀리 있다, 더 멀리에 그리고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이 그것들을 겨울하늘 위에 소용돌이치게 하고 순식간에 차가운 얼음 위로 끌어내린다.

농부이야기 2014.11.03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이외수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이외수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서늘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며 고즈넉한 찻집에 앉아 화려 하지않은 코스모스처럼 풋풋한 가을향기가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 한 잔을 마주하며 말없이 눈빚만 마주보아도 행복의 미소가 절로 샘솟는 사람 가을날 맑은 하늘빛처럼 그윽한 향기가 전해지는 사람이 그립다 찿잔 속에 향기가 녹아들어 그윽한 향기를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사람 가을엔 그런 사람이 그리워진다 산등성이의 은빛 억새처럼 초라하지않으면서 기품이있는 겉보다는 속이 아름다운 사람 가을에 억새처럼 출렁이는 은빛 향기를 가슴에 품어 보련다 빗줄기가 제법 굵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아침입니다 시 한편 읽으며 시작합니다

농부이야기 2014.11.02

11월!

11월의 시/ 이외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을 비우고 홀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도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 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 내가 사랑하는 계절/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농부이야기 2014.11.01

어머니에 대한 고백 / 복효근

어머니에 대한 고백 / 복효근 때 절은 몸뻬 바지가 부끄러워 아줌마라고 부를 뻔했던 그 어머니가 뼈 속 절절히 아름다웠다고 느낀 것은 내가 내 딸에게 아저씨라고 불리워지지는 않을까 두려워질 무렵이었다 갯뻘에서 일 하시다가 나오시면서 씻으시는 모습입니다 넓은 가을 바다에 아련히 울려오는 것, 어머니! 내가 늘 무언인가를 책임지고 있다는 느낌은 부모의 모습에선 아무것도 아닙니다 해변도로를 지나다가 생각에 잠깁니다

농부이야기 2014.10.24

일요일의 미학 / 김현승

일요일의 미학 / 김현승 노동은 휴식을 위하여 싸움은 자유를 위하여 있었듯이, 그렇게 일요일은 우리에게 온다. 아침빵은 따뜻한 국을 위하여 구워졌듯이. 어머니는 아들을 위하여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즐겁듯이, 일요일은 그렇게 우리들의 집에 온다. 오월은 푸른 수풀 속에 빨간 들장미를 떨어뜨리고 갔듯이. 나는 넥타이를 조금 왼쪽으로 비스듬히 매면서, 나는 음부(音符)에다 불협화음을 간혹 섞으면서, 나는 오늘 아침 상사(上司)에게도 미안치 않은 늦잠을 조을면서, 나는 사는 것에 조금씩 너그러워진다. 나는 바쁜 일손을 멈추고 이레만에 편히 쉬던 신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나의 남이던 내가, 채찍을 들고 명령하고 날카로운 호루라기를 불고 까다로운 일직선을 긋는 남이던 내가, 오늘은 아침부터 내가 되어 나를 ..

농부이야기 2014.10.19

목화꽃!!

꿈을 생각하며 / 김현승 목적은 한꺼번에 오려면 오지만 꿈은 조금씩 오기도 하고 안 오기도 한다. 목적은 산마루 위 바위와 같지만 꿈은 산마루 위의 구름과 같아 어디론가 날아가 빈 하늘이 되기도 한다. 목적이 연을 날리면 가지에도 걸리기 쉽지만 꿈은 가지에 앉았다가도 더 높은 하늘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그러기에 목적엔 아름다운 담장을 두르지만 꿈의 세계엔 감옥이 없다. 이것은 뚜렷하고 저것은 아득하지만 목적의 산마루 어디엔가 다 오르면 이것은 가로막고 저것은 너를 부른다. 우리의 가는 길은 아 ㅡ 끝 없어 둥글고 둥글기만 하다 ( 목화꽃 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옷과 이불의 소재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과거에 물레를 돌려서 씨를 제거하고, 무명옷과 방한용 의류 등에 없어서는 안되었던 목화 입니다 저희 집..

농부이야기 2014.10.13

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잔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는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이 세상에 ..

농부이야기 2014.10.10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박우현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박우현 이십 대에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삼십대에는 마흔이 두려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농부이야기 2014.09.29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이외수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이외수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서늘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며 고즈넉한 찻집에 앉아 화려하지 않은 코스모스처럼 풋풋한 가을향기가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 한 잔을 마주하며 말없이 눈빚만 마주보아도 행복의 미소가 절로 샘솟는 사람 가을날 맑은 하늘빛처럼 그윽한 향기가 전해지는 사람이 그립다 찻잔 속에 향기가 녹아들어 그윽한 향기를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사람 가을엔 그런 사람이 그리워진다 산등성이의 은빛 억새처럼 초라하지 않으면서 기품이 있는 겉보다는 속이 아름다운 사람 가을에 억새처럼 출렁이는 은빛 향기를 가슴에 품어 보련다 행복한 아침 여세요!!!

농부이야기 2014.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