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130

삶에 대한 감사 / 박노해

삶에 대한 감사/ 박노해 ​하늘은 나에게 영웅의 면모를 주지 않으셨다그만한 키와 그만한 외모처럼그만한 겸손을 지니고 살으라고 하늘은 나에게 고귀한 집안을 주지 않으셨다힘없고 가난한 자의 존엄으로세계의 약자들을 빛내며 살아가라고  하늘은 나에게 신통력을 주지 않으셨다상처받고 쓰러지고 깨어지면서 스스로 깨쳐가며 길이 되라고  하늘은 나에게 위대한 스승도 주지 않으셨다노동하는 민초들 속에서 지혜를 구하고최후까지 정진하는 배움의 사람이 되라고  하늘은 나에게 희생과 노력으로 이루어낸내 작은 성취마저 허물어 버리셨다낡은 것을 버리고 나날이 새로와지라고  하늘은 나에게 사람들이 탐낼만한 그 어떤 것도 주지 않으셨지만그 모든 씨앗이 담긴 삶을 다 주셨으니무력한 사랑 하나 내게 주신 내 삶에 대한 감사를 바칩니다고향집..

2025.02.16

겨울 초대장 /신달자

겨울 초대장 /신달자당신을 초대한다오늘은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이런 겨울 아침에 나는 물을 끓인다당신을 위해서어둠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내 힘이 비록 약하여 거듭 절망했지만언젠가 어둠은 거두어지게 된다밝고 빛나는 음악이 있는 곳에당신을 초대한다가장 안락(安樂)한 의자와 따뜻한 차와그리고 음악과 내가 있다바로 당신은 다시 나이기를 바라며어둠을 이기고 나온 나를 맨살로 품으리라지금은 아침눈이 내릴 것 같은 이 겨울 아침에나는 초인종 소리를 듣는다눈이 내린다눈송이는 큰 벚꽃 잎처럼 춤추며 내린다내 뜰안에 가득히당신과 나 사이에 가득히온누리에 가득히나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그리고 새롭게 창을 연다함박눈이 내리는 식탁 위에뜨거운 차를 분배하고당신이 누른 초인종 소리에 나는 답한다어서 오세요이 겨울의 잔치상에..아주 오..

2025.02.13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쿵거린다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너였다가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다시 문이 닫힌다.사랑하는 이여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자신의 아품은..

2025.02.12

그래도 아름다운 길이네 / 박노해

그래도 아름다운 길이네 / 박노해인생은 먼 길이네우리 길동무되어 함께 가자삶은 험한 길이네아침마다 신발끈을 고쳐매자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네지금 이 순간을 최후처럼 살자그래도 아름다운 길이네유쾌한 기분으로 치열히 걸어가자결국은 혼자 남는 길이네고독을 추구하며 우리 함께 가자 자신의 아품은 자신에게 있어서만 절대값이다(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2025.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