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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편지 / 임태주산 2024. 10. 6. 20:13
어머니 편지 / 임태주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질 못했다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마음대로라는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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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네 가을삶 2024. 9. 27. 21:07
연필 깍는 시간 / 김재진 마음속에서 누군가속삭이듯 이야기할 때 있습니다.사각거리며 걸어가는 눈 위의 발소리처럼내 마음속의 백지 위로 누군가긴 편지 쓸 때 있습니다.한 쪽 무릅 세우고뭔가를 깎아 보고 싶어 연필을 손에 쥡니다.주전자의 물이 끓는 겨울 저녁 9시유리창엔 김이 서립니다.내 마음에도 김이 서립니다.때로 몸이 느끼지 못하는 걸마음이 먼저 느낄 때 있습니다.채 깎지 않은 연필로 종이 위에'시간'이라 써 봅니다.좀더 크게 '세월'이라 써 봅니다.아직도 나는내게 허용된 사랑을 다 써버리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가끔은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그러면서 되돌아본다심각하게 체감도 하고,,,,파멸처럼 싸운다생의 한모퉁이를 돌아선 지금,,,세상은 온갖 훌륭한 이론과 철학, 과학,,,, 등이 있지만 몹시도 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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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별 / 윤수천삶 2024. 9. 24. 21:46
아름다운 이별 / 윤수천 우리는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비로소 오래 빛날 수 있다.저 높은 곳의 별처럼멀리 떨어져 있음으로써더욱 확실할 수 있다. 누가 이별을 눈물이라 했는가아픔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빛날 수도 없다아픔이 크면 클수록 더욱 빛나는이별은 인생의 보석이다. 헤어짐을 서러워하지 말라이별은 초라하고 가난한 인생에소중하고 눈부신 보석을 붙이는 일두고두고 빛날 수 있는사랑의 명패를 다는 일 아름다운 사치!살다보니 내것을 , 아니면 남의 것을 계산하고,,, 잡고 있느라,,,, 나의 삶에 더 많은 것을 이울수 있었을 것이다허비하고,,,탐하지 않았다면 추석을 지나고 아직은 달이 밝다어둠속에서 저렇게 밝은, 향기로운 빛이 되고 싶었다생각해보렵니다나를 억제하고 다스러온 긴 억제의 시간들어머니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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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시편/천양희삶 2024. 9. 20. 20:52
노을 시편/천양희강 끝에 서서 서쪽으로 드는노을을 봅니다노을을 보는 건 참 오래된 일입니다오래되어도 썩지 않는 것은 하늘입니다하늘이 붉어질 때 두고 간 시들이생각났습니다 피로 써라그러면....생각은새떼처럼 떠오르고나는 아무 것도쓸 수 없어마른풀 몇 개를 분질렀습니다피가 곧 정신이니....노을이 피로 쓴 시 같아노을 두어 편 빌려 머리에서 가슴까지길게 썼습니다 길다고 다 길이겠습니까그때 하늘이 더 붉어졌습니다피로 쓴 것만을사랑하라....내 속으로 노을 뒤편이드나들었습니다쓰기 위해 써버린 많은 글자들 이름들붉게 물듭니다노을을 보는 건 참 오래된 일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사랑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그리곤 살과 뼈를 깍는 고통을 통해서만 발전을 이루는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그는 더더욱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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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 / 이성복삶 2024. 9. 18. 14:19
전어 / 이성복 네 생각나면집 나간 며느리도돌아온다는 가을 전어남해 비토리에서손가락 두 개 포갠 크기의너의 몸 회 뜨는 것을 보았다네 모가지를 비스듬히 자르는 것은조금이라도 버려지는 살이아까워서였다잘린 모가지엔 검은 피가 묻어 있지만내장을 훑어낸 뱃대기는창포묵처럼 투명하였다인적 없는바닷가 모텔에서,입안에 녹아 흐르는 너의 살로피로한 연애의 여흥을 돋우는 것을모가지 잘리고서도너는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서해안 전어잡이 배들----) 가끔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삽니다그중 최고는 제가 유별납니다만...?삐지고, 지날나고,,, 관심을 가지고 깊이 바라보면, 귀하고 빛나는 삶이거늘 ,,, 내가 못보고 지나칠뿐,,,, 아름다운 사치일지도 모른다 이번 추석은 살아남는 것이 참 아름답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