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기도 / 이해인저무는 11월에 한 장 낙엽이 바람에 업혀 가듯그렇게 조용히 떠나가게 하소서그 이름 사랑이신 주님사랑하는 이에게도 더러는 잊혀지는 시간을서러워하지 않는 마음을 주소서길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가 손님일 뿐아무도 내 최후의 행방을 묻는주인 될 수 없음을 알아듣게 하소서그 이름 빛이신 주님한 점 흰구름 하늘에 실려가듯그렇게 조용히 당신을 향해 흘러가게 하소서죽은 이를 땅에 묻고 와서도노래할 수 있는 계절 차가운 두 손으로촛불을 켜게 하소서해 저문 가을 들녘에말없이 누워 있는 볏단처럼죽어서야 다시 사는영원의 의미를 깨우치게 하소서백양사 대웅전 뒷편 모과나무에 단풍나무가 더불어 살아갑니다. 가을에 익어가는 단풍과 모과를 보면서 삶도 정해진 원칙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