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106

설산에서 즐기는 여백!

3월에 /이해인 단발머리 소녀가 웃으며 건네준 한 장의 꽃봉투 새봄의 봉투를 열면 그 애의 눈빛처럼 가슴으로 쏟아져오는 소망의 씨앗들 가을에 만날 한 송이 꽃과의 약속을 위해 따뜻한 두손으로 흙을 만지는 3월 나는 누군가를 흔드는 새벽바람이고싶다 시들지 않는 언어를 그의 가슴에 꽃는 연두색 바람이고 싶다 부산 갈맷길에서 본 동백입니다 봄은 겨울속에서도 옵니다 바위에 나무가 꽃이 되었습니다 누구는 꽃이 되고, 그림이 되고,,,, 대피소도 인파가 가득합니다 여백 / 도종환 ​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2016.03.04

눈꽃!

눈꽃 아가 / 이해인 1 차갑고도 따스하게 송이송이 시가 되어 내리는 눈 눈나라의 흰 평화는 눈이 부셔라 털어내면 그뿐 다신 달라붙지 않는 깨끗한 자유로움 가볍게 쌓여서 조용히 이루어내는 무게와 깊이 하얀 고집을 꺾고 끝내는 녹아버릴 줄도 아는 온유함이여 나도 그런 사랑을 해야겠네 그대가 하얀 눈사람으로 나를 기다리는 눈나라에서 하얗게 피어난 줄밖에 모르는 눈꽃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순결한 사랑을 해야겠네 2 평생을 오들오들 떨기만 해서 가여웠던 해묵은 그리움도 포근히 눈밭에 눕혀놓고 하늘을 보고 싶네 어느 날 내가 지상의 모든 것과 작별하는 날도 눈이 내리면 좋으리 하얀 눈 속에 길게 누워 오래도록 사랑했던 신과 이웃을 위해 이기심의 짠맛은 다 빠진 맑고 투명한 물이 되어 흐를까 녹지 않는 꿈들일랑 얼음..

2016.01.24

선운사의 추억3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 이해인 가을, 가을,가을 하고 불러 보면 나는 금방 흰구름을 닮은 가을의 시인이 되어 기도의 시를 적어봅니다. 가을엔 나의 눈길이 저 푸른 하늘을 향해 파랗게 물들어서 더욱 깨어 있길 원합니다. 서늘하게 깨어 있는 눈길로 하루를 시작하고 사람들을 바라는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해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가을 엔 나의 마음이 불타는 단풍숲으로 들어가 붉게 물들어서 더욱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가을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가을엔 나의 손길이 보이지 않는 바람을 잡아 그리움의 기도로 키우 며 노래하길 원합니다. 하루하루를 늘 기도로 시작하고 세상 만물을 물을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는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가을엔 나의 발길이 산길을 걷는 수행자처럼 좀 더 성실하..

2015.10.02

7월의 시 / 이해인

7월의 시 / 이해인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랗게 떨어지는 꽃 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것일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일 수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테지요 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 향기로운 나날 되십시오

2015.06.30

6월의 시 - 이해인

6월의 시 / 이해인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6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가정의 달, 5월이 지나갑니다 내내 행복한 추억들 많이 만드셨는지요? 건강하고, 활력있는 6월, 그리고 싱그러운 여름 맞이하세요!

2015.05.31

덕담 - 도종환

덕담 - 도종환 지난해 첫날 아침에 우리는 희망과 배반에 대해 말했습니다 설레임에 대해서만 말해야 하는데 두려움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산맥을 딛고 오르는 뜨겁고 뭉클한 햇덩이 같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고 울음처럼 질펀하게 땅을 적시는 산동네에 내리는 눈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느티나무에 쌓이는 아침 까치소리 들었지만 골목길 둔탁하게 밟고 지나가는 불안한 소리에 대해서도 똑같이 귀기울여야 했습니다 새해 첫날 아침 우리는 잠시 많은 것을 덮어두고 푸근하고 편안한 말씀만을 나누어야 하는데 아직은 걱정스런 말들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올해도 새해 첫날 아침 절망과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새해에는 이런 사람이 - 이해인 평범하지만 가슴엔 별을 지닌 따뜻함으로 어..

2015.02.20

나를 위로하는 날 / 이해인

나를 위로하는 날 / 이해인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2015.01.30

나를 키우는 말 / 이해인

나를 키우는 말 / 이해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어제 아침 집에서 일출 놀이)

2015.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