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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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는.... / 이해인삶 2020. 9. 13. 10:22
이 가을에는.... / 이해인 이 가을에는 따뜻한 눈물을 배우게 하소서. 내 욕심으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소리없이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맑고 따뜻한 눈물을 배우게 하소서. 이 가을에는 빈 가슴을 소유하게 하소서. 집착과 구속이라는 돌덩이로 우리들 여린 가슴을 짓눌러 별처럼 많은 시간들을 힘들어 하며 고통과 번민 속에 지내지 않도록 빈 가슴을 소유하게 하소서. 이 가을에는 풋풋한 그리움 하나 품게 하소서. 우리들 매순간 살아감이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 누군가의 어깨가 절실히 필요할 때 보이지 않는 따스함으로 다가와 어깨를 감싸 안아줄 수 있는 풋풋한 그리움 하나 품게 하소서. 이 가을에는 말 없는 사랑을 하게 하소서. 사랑이라는 말이 범람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 만으로도 간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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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판에서삶 2019. 10. 15. 20:40
가을 들판에서 /김점희 가을볕이 좋아 바람 따라 길을 나선다. 초록의 싱싱함만 있어도 좋을 들녘은 잘 익은 가을 내음과 어여쁜 들꽃향기, 또르르또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가 있어 더욱 정겹다. 중년의 멋스러움으로 익어 가는 벼이삭들은 여유롭고 멋쟁이 백로의 우아한 몸짓에 가을은 한층 아름답다. 오솔길 걷다 투두둑 떨어진 밤송이, 토실토실 알밤 하나 꺼내어 오도독 깨물며 가을을 맛본다. 이 나무 저 나무 떼지어 노닐며 노래하는 참새들의 오페라는 무료공연이요, 넓고 높게 펼쳐진 푸른 하늘 뭉실뭉실 피어나는 하이얀 구름무대는 눈부시게 화려하고, 온 산에 단풍교향곡 울려 퍼지면 벅찬 이 감동 어찌 누를까. 그 날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호흡이 가빠온다 매년 가을이면 가는 곳, 황금빛 논과 갈대가 핀 농로가 아름답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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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입니다삶 2019. 9. 2. 19:55
일이라는 건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일이 생겨나서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이 일 입니다. 또한 일이란 생존이 아닌 공영의 의미를 띨 때 보다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불행한 건 없습니다. 또 일이 있어도 아무 의미 없이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처럼 비참한 일은 없습니다 이왕이면 어떤 분야를 창조하는 일일 때 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단지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타인의 진화에 도움을 주는 일이라면 더없이 반가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지금이라도 반드시 찿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루어야 합니다. ----- 무심, 이화영지움, 창조하는 일 중에서 --- 질겅질겅 밟히던 생각을 정리합니다 아니 포기 합니다 내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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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는 슬픔을 잊었다 / 김금란삶 2019. 5. 21. 20:37
그리하여 나는 슬픔을 잊었다 / 김금란 당신의 이름이 사라졌다 이른 봄꽃이 꽃망울을 피웠지만 서랍을 가득 채운 약봉지들만 당신을 기억할 뿐 무릉도원면 아랫골 길 163-12에는 당신의 이름으로 된 우편물 하나 더는 오지 않았다 사람을 잊는 것도 이름을 잊는 것도 계절을 보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한때 당신의 이름의 한 획이었던 활자들이 가끔 꽃샘추위처럼 내 머리속을 찌르고 지나갈 뿐 죽을 것처럼 오열했던 순간들은 땅에 닿은 힌 눈보다 빨리 사라졌다 나는 다시 울음보다 웃음이 많아졌고 틈만 나면 남해 여행 책자를 뒤적이고 있었다 세상에 남은 것은 그 누구의 슬픔도 그 누구의 이름도 아니었다 당신을 영 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했다 흙을 밟고 걷는 것이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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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을 말리면서 / 이향아삶 2018. 4. 23. 19:02
꽃다발을 말리면서 / 이향아 누가 내게 이와 같은 슬픔까지 알게 하는가 꽃이 피는 아픔도 예사가 아니거늘 저 순일한 목숨의 송이 송이 붉은 울음을 꺾어다가 하필이면 내 손에서 시들게 하는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처럼 꽃은 매달려서 절정을 모으고 영원히 사는 길을 맨발로 걸어서 이렇게 순하게 못 박히나니 다만 죽어서야 온전히 내게로 돌아오는 꽃이여 너를 안아 올리기에는 내 손이 너무 검게 너무 흉하게 여위었구나 황홀한 순간의 갈채는 지나가고 이제 남은 것은 빈혈의 꽃과 무심한 벽과 굳게 다문 우리들의 천 마디 말뿐 죽어가는 꽃을 거꾸로 매다노라면 물구나무서서 솟구치는 내 피의 열기, 내 피의 노여움, 네 피의 통곡, 꽃을 말린다 입술을 깨물고 검게 탄 내 피를 허공에 바랜다 비 내리는 날, 보리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