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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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을 말리면서 / 이향아삶 2018. 4. 23. 19:02
꽃다발을 말리면서 / 이향아 누가 내게 이와 같은 슬픔까지 알게 하는가 꽃이 피는 아픔도 예사가 아니거늘 저 순일한 목숨의 송이 송이 붉은 울음을 꺾어다가 하필이면 내 손에서 시들게 하는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처럼 꽃은 매달려서 절정을 모으고 영원히 사는 길을 맨발로 걸어서 이렇게 순하게 못 박히나니 다만 죽어서야 온전히 내게로 돌아오는 꽃이여 너를 안아 올리기에는 내 손이 너무 검게 너무 흉하게 여위었구나 황홀한 순간의 갈채는 지나가고 이제 남은 것은 빈혈의 꽃과 무심한 벽과 굳게 다문 우리들의 천 마디 말뿐 죽어가는 꽃을 거꾸로 매다노라면 물구나무서서 솟구치는 내 피의 열기, 내 피의 노여움, 네 피의 통곡, 꽃을 말린다 입술을 깨물고 검게 탄 내 피를 허공에 바랜다 비 내리는 날, 보리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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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청보리밭축제삶 2017. 5. 7. 08:08
봄날은 간다 / 기형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熱風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반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쪽으로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패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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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山行)의 꿈 / 신석종삶 2017. 1. 25. 21:46
산행(山行)의 꿈 / 신석종 더 추워지기 전에 어느 하루쯤은, 혼자서 한적한 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하늘 보고 눕고 싶다 쳐다보여지는 하늘이, 이왕이면 뿌옇게 흐려주었으면 더 좋겠고 흐린 만큼 푸근한 가을 숲에서 내가 살고있는 집 주소와 숱하게 드나들던 슈퍼마켓이랑 병목현상이 잦은 출근길, 이런 것들도 함께 쉬이 그 날 하루는 저절로 잊혀졌으면 좋겠다 버거운 시간에 맞추려고 순간 순간들을 토막냈던 기억과 지금 가봐야 할 곳 때문에 미리 앞서서 조바심하는 그런 잡다한 것들을 깜빡 잊어도 좋을, 하늘을 어느 하루는 보고싶다 入山했던 길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하루 예전의 화로가 그리운 몇 일? 들판으로 나간 날, 나의 행복이 얼마나 단순하고, 작은 것인지를 알았다 여기가 행복이라고,,, 아마도 불이문(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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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사랑의 기도 / 안도현농부이야기 2016. 3. 8. 21:59
봄날, 사랑의 기도 / 안도현 봄이 오기 전에는 그렇게도 봄을 기다렸으나 정작 봄이 와도 저는 봄을 제대로 맞지 못했습니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당신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 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갓 태어난 아기가 "응아" 하는 울음소리로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듯 내 입 밖으로 나오는 "사랑해요" 라는 말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을 부끄럽게 하소서 남을 위해 한 번도 열려본 적이 없는 지갑과 끼니때마다 흘러 넘쳐 버리던 밥이며 국물과 그리고 인간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 부끄럽게 하소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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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삶 2015. 10. 16. 19:09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