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74

가난한 가을 / 노향림

가난한 가을 / 노향림 가난한 새들은 더 추운 겨울로 가기 위해새끼들에게 먼저 배고픔을 가르친다.제 품속에 품고 날마다 물어다 주던 먹이를 끊고대신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킨다.누렇게 풀들이 마른 고수부지엔 지친새들이 오종종 모여들고 머뭇대는데어미 새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음울한 울음소리만이높은 빌딩 유리창에 부딪쳐 아찔하게떨어지는 소리만이 가득하다.행여 무리를 빠져나온 무녀리들 방향 없이빈터에서라도 낙오되어 길 잃을까드문드문따듯한 입김 어린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그 지시등 따라 창 밑까지 선회하다가있는 힘 다해 지상에서 가장 멀리 치솟아 뜬허공에 무수히 박힌 까만 충치 자국 같은 비행체들캄캄한 하늘을 날며 멀리로 이사 가는철새들이 보이는 가을날의 연속이다. 친구들과 마시고 떠들던 가을 갑니다누구는..

2024.11.14

짧은 여행, 남이섬

인연서설 / 문병란 ​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나듯이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그렇게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물을 찾는 뿌리를 안으로 감춘 채원망과 그리움을 불길로 건네며너는 나의 애달픈 꽃이 되고나는 너의 서러운 꽃이 된다​사랑은저만치 피어 있는 한 송이 풀꽃이 애틋한 몸짓서로의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가지며사랑은 가진 것 하나씩 잃어 가는 일이다​각기 다른 인연의 한 끝에 서서눈물에 젖은 정한 눈빛 하늘거리며바람결에도 곱게 무늬지는 가슴사랑은 서로의 눈물 속에 젖어 가는 일이다​오가는 인생 길에 애틋이 피어났던너와 나의 애달픈 연분도가시덤풀 찔레꽃으로 어우러지고, 다하지 못한 그리움사랑은 하나가 되려나마침내 부서진 가슴 핏빛 노을로 타오르나니​이 밤도 파도는 밀려와잠 못 드는 바닷가에 모래알로..

2024.11.13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이 저물어 갑니다가을이 무엇이라고,,,, 사랑도 배워야 한답니다

2024.11.11

하루,86'400초

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집이 있는 자는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세월을 몰고다만 멀어져 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는 날을 그리워하고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죽어가는 자는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어떤 나그네는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다고 생각하는 것을,누구는 스스로어떤이는 지인에게 묻습니다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내가 보고 느낀 것이 판단이라는 함지에 담겨..

2024.11.05

깊어가는 가을 / 이해인

깊어가는 가을 / 이해인  하늘은 높아 가고마음은 깊어 가네꽃이 진 자리마다열매를 키워 행복한나무여바람이여슬프지 않아도안으로 고여오는 눈물은그리움 때문인가가을이 오면어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고멀리 있는 친구가 보고 싶고죄 없어 눈이 맑았던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네친구여너와 나의 사이에도말보다는 소리 없이강이 흐르고이제는 우리더욱 고독해져야겠구나남은 시간 아껴 쓰며언젠가 떠날 채비를서서히 해야겠구나잎이 질 때마다한 움큼의 시(詩)들을 쏟아내는나무여바람이여영원을 향한 그리움이어느새 감기 기운처럼 스며드는 가을하늘은 높아 가고기도는 깊어 가네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황지..

2024.10.16

이응노네 가을

연필 깍는 시간 / 김재진 마음속에서 누군가속삭이듯 이야기할 때 있습니다.사각거리며 걸어가는 눈 위의 발소리처럼내 마음속의 백지 위로 누군가긴 편지 쓸 때 있습니다.한 쪽 무릅 세우고뭔가를 깎아 보고 싶어 연필을 손에 쥡니다.주전자의 물이 끓는 겨울 저녁 9시유리창엔 김이 서립니다.내 마음에도 김이 서립니다.때로 몸이 느끼지 못하는 걸마음이 먼저 느낄 때 있습니다.채 깎지 않은 연필로 종이 위에'시간'이라 써 봅니다.좀더 크게 '세월'이라 써 봅니다.아직도 나는내게 허용된 사랑을 다 써버리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가끔은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그러면서 되돌아본다심각하게 체감도 하고,,,,파멸처럼 싸운다생의 한모퉁이를 돌아선 지금,,,세상은 온갖 훌륭한 이론과 철학, 과학,,,, 등이 있지만 몹시도 귀한..

2024.09.27

아름다운 이별 / 윤수천

아름다운 이별 / 윤수천 우리는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비로소 오래 빛날 수 있다.저 높은 곳의 별처럼멀리 떨어져 있음으로써더욱 확실할 수 있다. 누가 이별을 눈물이라 했는가아픔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빛날 수도 없다아픔이 크면 클수록 더욱 빛나는이별은 인생의 보석이다. 헤어짐을 서러워하지 말라이별은 초라하고 가난한 인생에소중하고 눈부신 보석을 붙이는 일두고두고 빛날 수 있는사랑의 명패를 다는 일   아름다운 사치!살다보니 내것을 , 아니면 남의 것을 계산하고,,, 잡고 있느라,,,, 나의 삶에 더 많은 것을 이울수 있었을 것이다허비하고,,,탐하지 않았다면 추석을 지나고 아직은 달이 밝다어둠속에서 저렇게 밝은, 향기로운 빛이 되고 싶었다생각해보렵니다나를 억제하고 다스러온 긴 억제의 시간들어머니를 생각합니다

2024.09.24

안개 속에 숨다 / 류시화

안개 속에 숨다 / 류시화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 감을 두려워한다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죽음과 동시에 잊히고 싶지 않다면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을 쓰라.  또는 글로 쓸 가치가 있는 일을 하라     --- 베저민 프랭크린 ---

2024.08.21

가을엽서 / 안도현

가을엽서 /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아침 공기가 참 포근합니다 감사라는 단어로 이틀째 적어 보며, 생각해보았습니다 주어진것이 너무 많아 너무도 감사한 하루의 시작이였습니다 ---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의 꽃나무 입니다 행복은 감사에 있다지요,,,, 우리의 가슴에 심어 놓은 꽃나무에,,, 오늘은 무슨 꽃을 피우고, 주변에 향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합니다 감사한 하루되십시요

2023.11.02

가을 들길에서 / 류정숙

가을 들길에서 / 류정숙 가을 들길을 거닐면 노을을 등에 지고 거닐면 외로움이 동행이다. 바람으로는 헹궈낼 수 없는 햇살로는 말려낼 수 없는 그리움이 동행이다. 외롭다는 건 동행인이 없음이 아니요 함께할 이를 찾고자 함이라.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가을 들길을 걸어 보면 그리움으로 떠오른다. 홀로 거닒은 누구와 함께이기를 원하는지 누구를 그리워하는지 알기를 원함이라 감사함이 가득한 아침입니다 가을을 담아 봅니다 가까이 다다가서 담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잠드는 순간까지 우리의 사랑이 오로지 하나이기를 소망합니다

2023.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