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74

가을 순례자 / 홍수희

가을 순례자 / 홍수희 가면 갈수록 깜깜해져 옵니다 가면 갈수록 풍경도 없이 알고 있던 것도 도무지 몰랐던 듯 모르고 있던 것 여전히 그러할 듯 안으로 안으로 들어갈수록 내 안으로 내 안으로 들어갈수록 나는 보이지 않고 깜깜한 어둠만 보입니다 사랑이여, 그 깜깜한 어둠 뒤에 당신이 숨어계신 게지요 이 가을, 내 영혼의 중심에서 불타오르는 이여! 시간은 가을 입니다 가을에는 잠깐 멈춤 입니다

2022.08.25

숲을 지나오다 / 김수영

숲을 지나오다 / 김수영 참나무와 졸참나무의 숲입니다 나뭇진이 흐르던 자리 (상처 없는 영혼도 있을까요) 가을이 오면 그 나무의 단풍이 많겠지요 오솔진 숲으로 흐르는 여름 해의 눈부신 역광 발효한 빛의 향기가 헤매이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꿀에 취해 더러운 흙에서 나서 죽을 때까지 쓸쓸하여 허기지는 것들 가을까지라면 더욱 무겁겠지요 푸른 채 떨어진 나뭇잎과 굳어가는 나무 줄기 잘 구워진 깊은 우물 같은 마음의 맨 밑바닥에서 벗겨낸 한 두름의 그늘은 그 그늘이 된 자리에서 더 낮은 곳으로 쟁쟁히 울립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있을까요 살면서 오래 아파함도 기쁨이겠지요 가을이 진정 아름다은 건 눈물 가득 고여오는 그대가 있기 때문이리 (이해인, 가을이 아름다운 건 중에서)

2021.11.04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고정희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고정희 고요하여라 너를 내가슴에 품고 있으면 무심히 지나는 출근 버스 속에서도 추운이들 곁에 따뜻한 차 한잔 끓이는 것이 보이고 울렁거려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여수 앞바다 오동도쯤에서 춘설속에 적동백 화드득 화드득 툭 터지는 소리 들리고 눈물겨워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중국 산동성에서 날아온 제비들 쓸쓸한 처마, 폐허의 처마밑에 자유의 둥지 사랑의 둥지 부드러운 혁명의 둥지 하나둘 트인 것 이 보이고. 가을 마지막 절기인 상강이 오늘이니, 끝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짧은 가을 시간을 잘 경영하여 더욱 행복하십시요

2021.10.23

기도 / 신달자

기도 / 신달자 아마 이런 마음일 것입니다. 잘 됐으면, 일이 잘 됐으면, 자녀들이 잘 됐으면, 내 앞으로의 일들이 잘 됐으면... 좋아 졌으면, 안 좋아졌던 모든 것이 다 좋아 졌으면, 내 신앙이 좋아졌으면, 우리 식구들의 믿음이 좋아졌으면, 우리 교회가 날마다 부흥함으로 좋아졌으면.... 육신은 건강했으면, 아픈 몸이 건강했으면, 건강한 몸은 더 건강했으면, 심령에는 은혜가 넘쳤으면, 그리하여 감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는 것이 신나고 즐겁고 행복했으면.. 한 마디로 `복 있는 자`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오늘 읽었던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복 있는 자`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3절에 있는 말씀처럼,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

2021.10.05

가을햇살 / 오광수

가을햇살 / 오광수 등 뒤에서 살짝 안는 이 누구신가요? 설레이는 맘으로 뒤돌아 보니 산모퉁이 돌아온 가을 햇살이 아슴 아슴 남아있는 그사람 되어 단풍 조막손 내밀며 걷자 합니다 나릿물 떠내려온 잎 하나 눈에띄어 살가운 마음으로 살며시 건졌더니 멀리본 늦가을 산이 손안에서 고와라 사무실 인근에 코스모스 밭이 조성되어 가을을 선물합니다 인근에 사람을 만나서 커피 마시고, 둘러보고 왔습니다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장상인님의 커피 한 잔으로 떠나는 세계여행을 읽으며 배운 것? 커피를 마실 때, 1/3은 원액으로 맛을 깊이 음미하고, 1/3은 설탕을 넣어서, 1/3은 우유를 넣어서 마시라는 겁니다 가을도,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눠서 느껴보면 어떨까 합니다 ㅎㅎ

2021.10.02

10월의 기도 / 이해인

10월의 기도 / 이해인 언제나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좋은 말과 행동으로 본보기가 되는 사람냄새가 나는 향기를 지니게 하소서 타인에게 마음의 짐이 되는 말로 상처를 주지 않게 하소서 상처를 받았다기보다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먼저 생각하게 하소서 늘 변함없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살아가며 고통이 따르지만 변함없는 마음으로 한결같은 사람으로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마음에 욕심을 품으며 살게 하지 마시고 비워두는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시고 남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게 하소서 무슨 일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아픔이 따르는 삶이라도 그안에 좋은 것만 생각하게 하시고 건강 주시어 나보다 남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10월에는 많은 사람..

2021.10.01

내 속의 가을 / 최영미​

내 속의 가을 / 최영미 ​ 바람이 불면 나는 가을이다 ​ 높고 푸른 하늘이 없어도 뒹구는 낙엽이 없어도 지하철 플랫폼에 앉으면 시속 100킬로로 달려드는 시멘트 바람에 낡은 초상들이 몰려왔다 흩어지는 ​ 창가에 서면 나는 가을이다 ​ 따뜻한 커피가 없어도 녹아드는 선율이 없어도 바람이 불면 5월의 풍성한 잎들 사이로 수많은 내가 보이고 거쳐온 방마다 구석구석 반짝이는 먼지도 보이고 어쩌다 네가 비치면, 가을이다 ​ 담배연기도 뻣뻣한 그리움 지우지 못해 알루미늄 새시에 잘려진 풍경 한 컷, 우수수 ​ 네가 없으면 나는 가을이다 팔짱을 끼고 가-을 오늘은 이른 새벽에 저수지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복잡한 시간이 얽혀서 돌아가지만, 결론은 시간의 길을 따라 여행을 합니다 혼자 살 수는 없는 세상이지만, 자연스레..

2021.09.25

내 나이 가을에 서서 / 이해인

내 나이 가을에 서서 / 이해인 젊었을 적 내 향기가 너무 짙어서 남의 향기를 맡을 줄 몰랐습니다 내 밥그릇이 가득차서 남의 밥그릇이 빈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사랑에 갈한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퇴색의 계절 반짝 반짝 윤이나고 풍성했던 나의 가진 것들이 바래고 향기마저 옅어지면서 은은히 풍겨오는 다른 이의 향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고픈 이들의 빈 소리도 들려옵니다 목마른 이의 갈라지고 터진 마음도 보입니다 이제서야 보이는 이제서야 들리는 내 삶의 늦은 깨달음 이제는 은은한 국화꽃 향기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밥그릇 보다 빈 밥그릇을 먼저 채 우겠습니다 받은 사랑 잘 키워서 풍성히 나눠 드리겠습니다 내 나이 가을에 겸손의 언어로 채우겠습니다 오늘은 고향집 앞 논으로 여행을 ..

2021.09.22

반쯤 깨진 연탄 / 안도현

반쯤 깨진 연탄 / 안도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

2021.09.12

가을날의 인연 / 곽승란

가을날의 인연 / 곽승란 가을 익는 햇살 속에 수정처럼 맑은 미소가 상큼한 친구와 수줍은 듯 다소곳이 도란도란 이야기 주고받으며 그늘진 숲길 걸어봤으면. 호수보다 깊고 푸른 마음 노을 빛으로 가라앉은 지친 우리 삶 보랏빛 들국화 고 운길 너하고 나하고 걸어봤으면. 남아있는 짧은 세월 세상 한 귀퉁이에서 자신의 빛깔 찾으며 들꽃처럼 고운 인연으로 노을길 함께 걸어봤으면. 어디 그런 고운 친구 없을까? 노을도 가을색으로 변화합니다 계절도 변화하듯이, 삶에서의 기준도 순간 순간 흔들립니다 흔들림의 신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의연하게 길을 가라는 신호이기도 하지요

202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