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산 소나무 아래서

농돌이 2021. 10. 13. 04:01

흰 빛 / 박영근

 

밤하늘에 막 생겨나기 시작한 별자리를 볼 때가 있다, 그래

고통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잣소리로 미쳐갈 때에도

밥 한 그릇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치욕일 때도

그것은 어느새 네 속에 들어와 살면서

말을 건네지

살아야 한다는 말

 

그러나 집이 어디 있느냐고 성급하게 묻지 마라

길이 제가 가닿을 길을 모르듯이

풀씨들이 제가 날아갈 바람 속을 모르듯이

아무도 그 집 있는 곳을 가르쳐줄 수 없을 테니까

믿어야 할 것은 바람과

우리가 끝까지 지켜보아야 할 침묵

그리고 그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

이렇게 우리 헤어져서

너도 나도 없이 흩날리는

눈송이들 속에서

 

그래, 이제 시는 그만두기로 하자

그 숱한 비유들이 그치고

흰 빛, 흰 빛만 남을 때까지

 

-- 시집 『저 꽃이 불편하다』(창비, 2002)--

바라보는 자는 믿는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주대준, 바라봄의 법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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