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련 6

인연의 잎사귀 / 이해인

인연의 잎사귀 / 이해인 수첩을 새로 샀다 원래 수첩에 적혀있던 것들을 새 수첩에 옮겨 적으며 난 조금씩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어느 이름은 지우고 어느 이름은 남겨 둘 것인가 그러다가 또 그대 생각을 했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이 묻혀지고 잊혀진다 하더라도 그대 이름만은 내 가슴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언젠가 내가 바람 편에라도 그대를 만나보고 싶은 까닭이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이 있겠지만 그대와의 사랑, 그 추억만은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까닭이다 두고두고 떠올리며 소식 알고픈 단 하나의 사람 내 삶에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 남겨준 사람 슬픔에서 벗어나야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 그대에게 벗어나 ..

2022.07.19

빗방울이 두드리고 싶은 것 / 남정림

빗방울이 두드리고 싶은 것 / 남정림 ​ 빗방울은 꽃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싶어 ​구름의 절벽에서 떨어져 ​지구로 달려온다 ​ 빗방울은 어두운 대기에 둥근 희망의 사선을 그으며 투명하게 다가선다 ​ ​빗방울이 무지개우산을 두드리면 빛망울은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린다 꽃의 가슴으로 달려가 안기고 만다 불행은 행복이라는 이름의 나무 밑에 드리워져 있는 그 나무 만한 크기의 그늘이다 인간이 불행안 이유는 그 그늘까지를 나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이외수 감성사전 중에서 --

2021.07.06

바람의 말​ / 마종기​​

바람의 말​ / 마종기​ ​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거야. ​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나, 그대와 함께 했던 그때만이 오직 존재할 것이다

2020.07.15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 정 주 )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비바람에 연꽃이 많이 지고, 상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 일이 없던 걸처럼 아침은 오고, 조용합니다 행복한 아침이요,,,,

2013.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