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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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백 / 오광수삶 2019. 12. 6. 12:32
12월의 독백 / 오광수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 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하나는 펼치면서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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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대장 / 신달자삶 2019. 12. 5. 12:54
겨울 초대장 / 신달자 당신을 초대한다 오늘은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 이런 겨울 아침에 나는 물을 끓인다 당신을 위해서 어둠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내 힘이 비록 약하여 거듭 절망했지만 언젠가 어둠은 거두어지게 된다 밝고 빛나는 음악이 있는 곳에 당신을 초대한다 가장 안락(安樂)한 의자와 따뜻한 차와 그리고 음악과 내가 있다 바로 당신은 다시 나이기를 바라며 어둠을 이기고 나온 나를 맨살로 품으리라 지금은 아침 눈이 내릴 것 같은 이 겨울 아침에 나는 초인종 소리를 듣는다 눈이 내린다 눈송이는 큰 벚꽃 잎처럼 춤추며 내린다 내 뜰안에 가득히 당신과 나 사이에 가득히 온누리에 가득히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리고 새롭게 창을 연다 함박눈이 내리는 식탁위에 뜨거운 차를 분배하고 당신이 누른 초인종 소리에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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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편지 / 이종암삶 2019. 6. 22. 14:05
바닷가 편지 / 이종암 바닷가 벼랑에 강단지게 서 있는 해송 한 그루는 우체국이다 파도와 바람의 공동 우체국 수평선, 지평선 너머의 소식들 푸른 솔가지 위로 왔다가 가네 영원한 정주(定住)는 없다는 걸 흔들리는 여린 가지 끝에서 나는 예감하네 물 알갱이 하나 햇살 따라 바람 따라 오고 가는 것 누가 여기 이 자리에 나를, 또 너를 비끄러매려 해도 소용없는 일임을 나는 알겠네 소용없는 길 위에 서서 내가 본 만큼의 내용으로 그만큼의 빛으로 편지를 쓰네 봄날 흙 속으로 내려가 앉는 물의 걸음으로, 숨을 놓으며 쓰네 이미 시작된 미래 사회에는 준비하고 도전하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 -- 피터 드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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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을 오르며,,,,산 2019. 1. 11. 22:29
행복한 그리움 / 박성철 오랜 그리움 가져본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사람 하나 그리워하는 일이 얼마나 가슴 미어지는 애상인지를 쓸쓸한 삶의 길섶에서도 그리움은 꽃으로 피어나고 작은 눈발로 내리던 그리움은 어느새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는 깊은 눈발이 되었습니다 애매모호한 이 기억의 잔상들 그리움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슬픔이든 기쁨이든 그리움의 끝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습니다 가슴 저미는 사연을 지녔다 해도 고적한 밤에 떠오르는 그대 그리움 하나로 나는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임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인가? 어느날 훌쩍 떠나도 미련없이 좋은 것인가? 설산에서 맞는 눈바람은, 나의 닫혀진 가슴을 열어 달라는 흔들림이었다 눈바람이 불어온다 나의 심장의 문이 덜컹 거린다 한걸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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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사진을 바라보며,,,!산 2018. 3. 4. 06:42
내 눈동자 속의 길 / 강윤미 여행 끝에 도착한 여관방 누군가 마지막까지 힘껏 짜다 만 치약 한 번 쓸 만큼만 남겨 놓은 그것을 검지에 묻힌다 어둠이 이 방을 헹구고 갈 때까지 나는 오랫동안 후생의 나를 기다린 것 같다 흑백사진 같은 거울에 스며 있는 수많은 여행자의 몰골 위에 나는 입깁을 불어 강물이라고 쓴다 눈을 깜빡이자 타일 무늬 속으로 황급히 휘돌아가는 기척 벽의 수면 위로 꽃들이 질 줄 모르고 핀다 꽃들이 토해내는 향기를 쫓아 모래사장을 걸어나가면 저녁은 태어나고 수평선에서 겨우 빠져나온 오징어배의 불빛들 한숨 돌리고 또다시 파도를 뜯으러 달려가는 모래알을 따라가면 눈동자에서 시작한 길의 끝을 만난다 노을에 취한 파도였는지 포말에 엉겨붙은 바람이었는지 비릿한 게 그리워 나는 쉴새없이 셔터를 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