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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운 바다 성산포 2 / 이생진
    2023. 2. 11. 14:53

    그리운 바다 성산포 2 / 이생진

    일출봉에 올라 해를 본다
    아무 생각 없이 해를 본다
    해도 그렇게 날 보다가 바다에 눕는다
    일출봉에서 해를 보고 나니 달이 오른다
    달도 그렇게 날 보더니 바다에 눕는다
    해도 달도 바다에 눕고 나니 밤이 된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바다에 누워서 밤이 되어 버린다

    날짐승도 혼자 살면 외로운 것
    바다도 혼자 살기 싫어서 퍽퍽 넘어지며 운다
    큰 산이 밤이 싫어 산짐승을 불러오듯
    넓은 바다도 밤이 싫어 이부자리를 차내 버리고
    사슴이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밤을 피해 가듯
    넓은 바다도 물 속으로 밤을 피해 간다

    성산포에서는 그 풍요 속에서도 갈증이 인다.
    바다 한 가운데 풍덩 생명을 빠뜨릴 순 있어도
    한 모금 물을 건질 수는 없다
    성산포에서는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바다가 사방에 흩어져 산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은 가장 죽기 좋은 곳
    성산포에서는 생과 사가 손을 놓지 않아서
    서로가 떨어질 수 없다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 넋
    파도는 피워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워 할 것도 없이 돌아선다
    사슴이여, 살아 있는 사슴이여
    지금 사슴으로 살아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꽃이여, 동백꽃이여
    지금 꽃으로 살아 있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슴이 산을 떠나면 무섭고
    꽃이 나무를 떠나면 서글픈데
    물이여, 너 물을 떠나면 또 무엇을 하느냐
    저기 저 파도는 사슴 같은데 산을 떠나 매맞는 것
    저기 저 파도는 꽃 같은데 꽃밭을 떠나 시드는 것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 넋
    파도는 피워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움도 없이 말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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