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헹 6

노을 / 나태주

노을 / 나태주 방 안 가득 노래로 채우고 세상 가득 향기로 채우고 내가 찾아갔을 때는 이미 떠나가버린 사람아 그 이름조차 거두어가버린 사람아 서쪽 하늘가에 핏빛으로 뒷모습만 은은하게 보여줄 줄이야. 지난 해 12월 31일에 간월암으로 해넘이 다녀왔습니다 지니고 있다가,,,, 마음속에 두었던 것들은 , 지난주 마무리 하고 해넘이 합니다 살아있는것 자체가 희망이라고 옆에 있는 사람이 다 희망이라고 내게 다시 말해주는 나의 작은 희망의 당신 고맙습니다 --- 희망은 깨어있네, 이해인 ---

2023.01.08

대관령 옛길 / 김선우

대관령 옛길 / 김선우 폭설주의보 내린 정초에 대관령 옛길을 오른다 기억의 단층들이 피워올리는 각양각색의 얼음꽃 소나무 가지에서 꽃숭어리 뭉텅 베어 입 속에 털어넣는다, 火酒- 싸아하게 김이 오르고 허파꽈리 익어가는지 숨 멎는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목구멍 위장 쓸개 십이지장에 고여 있던 눈물이 울컹 올라온다. 지독히 뜨거워진다는 건 빙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 붉게 언 산수유 열매 하나 발등에 툭, 떨어진다 때론 환장할 무언가 그리워져 정말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워질 적이면 빙화의 대관령 옛길, 아무도 오르려 하지 않는 나의 길을 걷는다 겨울 자작나무 뜨거운 줄기에 맨 처음인 것처럼 가만 입술을 대고 속삭인다, 너도 갈 거니? 1996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

2021.03.21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 / 양광모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 / 양광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니 따뜻한 것이 그립다 따뜻한 커피 따뜻한 창가 따뜻한 국물 따뜻한 사람이 그립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조금이라도 잘 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워하는 일일 게다 어려서는 어른이 그립고 나이 드니 젊은 날이 그립다 여름이면 흰 눈이 그립고 겨울이면 푸른 바다가 그립다 헤어지면 만나고 싶어 그립고 만나면 혼자 있고 싶어 그립다 돈도 그립고 사랑도 그립고 어머니도 그립고 아들도 그립고 네가 그립고 또 내가 그립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어떤 사람은 따뜻했고 어떤 사람은 차가웠다 어떤 사람은 만나기 싫었고 어떤 사람은 헤어지기 싫었다 어떤 사람은 그리웠고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누군가에게 그리운 사람이 되자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 사람이..

2021.01.13

행복 / 김재진

행복 / 김재진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는 나무처럼 사람들 속에 섞여 고요할 때 나는 행복하다 아직은 튼튼한 두 다리로 개울을 건너거나 대지의 맨살을 발바닥으로 느낄 때 만지고 싶은 것 입에 넣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하나 없이 비어 있을 때 행복하다 가령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어깨에 닿고 한 마리 벌이 꽃 위에 앉아 있는 그 짧은 세상을 눈여겨 보라 멀리 산 그림자 조금씩 커지고 막 눈을 뜬 앵두꽃 이파리 하나 하나가 눈물겹도록 아롱거려 올 때 붙잡는 마음 툭, 밀어 놓고 떠날 수 있는 그 순간이 나는 행복하다

2015.02.09

용봉산 최영장군 활터에서

내가 나를 바라보니 조오현 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 2001 - 산에 사는 날에 / 조오현 나이는 뉘엿뉘엿한 해가 되었고 생각도 구부러진 등골뼈로 다 드러났으니 오늘은 젖비듬히 선 등걸을 짚어 본다 그제는 한천사 한천스님을 찾아가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보았다 말로는 말 다할 수 없으니 운판 한번 쳐 보라, 했다 이제는 정말이지 산에 사는 날에 하루는 풀벌레로 울고 하루는 풀꽃으로 웃고 그리고 흐름을 다한 흐름이나 볼 일이다. 일색변(一色邊) 1 / 조오현(霧山) 무심한 한 덩이 바위도 바위소리 들을라면 들어도 들어 올려도 끝내 들리지 않아야 그 물론 검버섯 같은 것이 거뭇거뭇 피어나야 용봉산 최..

2014.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