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조여행 16

낙조를 바라보며

황해 낙조(落照) / 황동규 ​ '서방(西方)으로 간다'는 동서양 말 모두 죽는다는 뜻이고 오늘 태안 앞바다 낙조는 서쪽으로 갈매기 한 떼를 날리며 바다 위에 한없이 출렁이는 긴 붉은 카펫을 깔았다. 죽을 땐 그 위를 걸어 곧장 가라는 뜻이겠지. 저고리와 고름 채 안 보이지만 하늘이 붉은 치마 반쯤 풀고 카펫 하도 황홀히 출렁여 정신없으리. 제대로 가지 못하고 도중에 멍하니 발길 멈추리. 두 세상 사이에 서서 오도 가도 못 하고. ​ 황동규,​『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문학과지성사, 2003) 명절, 긴 연휴를 보내고, 아들과 낙조를 바라보며 마무리 합니다

2022.09.13

사랑하는 별 하나 / 이성선

사랑하는 별 하나 / 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 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 나의 행복나무의 키를 키울 사람은 ,,,,?

2021.11.30

황혼에 서서 / 이영도

황혼에 서서 / 이영도 산이여, 목메인 듯 지긋이 숨죽이고 바다를 굽어보는 먼 침묵은 어쩌지 못할 너 목숨의 아픈 견딤이랴 너는 가고 애모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입 같은 물결 같은 내 소리 세월은 덧이 없어도 한결 같은 나의 정. 가족들과 노을전망대에서 바닷바람 쐬고 돌아오는 길, 삶의 간절함이, 살아 있음에 감사함이 함께 할 수 있으니 내 안의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2021.06.13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 / 양광모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 / 양광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니 따뜻한 것이 그립다 따뜻한 커피 따뜻한 창가 따뜻한 국물 따뜻한 사람이 그립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조금이라도 잘 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워하는 일일게다 어려서는 어른이 그립고 나이드니 젊은 날이 그립다 헤어지면 만나고 싶어 그립고 만나면 혼자 있고 싶어 그립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어떤 사람은 따뜻했고 어떤 사람은 차가웠다. 어떤 사람은 만나기 싫었고 어떤 사람은 헤어지기 싫었다 어떤 사람은 그리웠고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누군가에게 그리운 사람이 되자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 사람이 그리워해야 사람이다 마음에 있는데, 멀리 멀리 돌아서 다가가지는 말아야지,,,

2020.11.10

안아주기......나호열

안아주기......나호열 어디 쉬운 일인가 나무를, 책상을, 모르는 사람을 안아준다는 것이 물컹하게 가슴과 가슴이 맞닿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대, 어둠을 안아 보았는가 무량한 허공을 안아 보았는가 슬픔도 안으면 따뜻하다 미움도 안으면 따뜻하다 가슴이 없다면 우주는 우주가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강열한 했볕 속에서 태어나 그 했볕 속으로 사라져가는 소금 등짐을 지고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나 -너에게 묻는다 전문, 나호열 -

2020.09.24

우리의 삶은 하나의 약속이다 / 용혜원

우리의 삶은 하나의 약속이다 / 용혜원 우리들의 삶은 하나의 약속이다. 장난기 어린 꼬마아이들의 새끼손가락을 거는 놀음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다리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설혹 아픔일지라도 멀리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지라도 작은 풀에도 꽃은 피고 강물은 흘러야만 하듯 지켜야 하는 것이다. 잊혀진 약속들을 떠올리면서 이름 없는 들꽃으로 남아도 나무들이 제자리를 스스로 떠나지 못함이 하나의 약속이듯이 만남 속에 이루어지는 마음의 고리들을 우리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켜야 한다. 서로를 배신해야 할 절망이 올지라도 지켜주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하늘 아래 행복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어야 한다. 삶은 수많은 고리로 이어지고 때론 슬픔이 전율로 다가올지라도 몹쓸 자식도 안아야 하는 어미의 운명처럼 지켜줄 줄 아는 마음을..

2020.07.03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 최영미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 최영미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창자를 뒤집어 보여줘야 하나 나도 너처럼 썩었다고 적당히 시커멓고 적당히 순결하다고 버티어온 세월의 굽이만큼 마디마디 꼬여 있다고 그러나 심장 한귀퉁이는 제법 시퍼렇게 뛰고 있다고 동맥에서 흐르는 피만큼은 세상모르게 깨끗하다고 은근히 힘을 줘서 이야기해야 하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도 충분히 부끄러워 할 줄 안다고 그때마다 믿어달라고, 네 손을 내 가슴에 얹어줘야 하나 내게 일어난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두 팔과 두 다리는 악마처럼 튼튼하다고 그처럼 여러 번 곱씹은 치욕과, 치욕 뒤의 입가심 같은 위로와 자위끝의 허망한 한 모금 니코틴의 깊은 맛을 어떻게 너에게 말해야 하나 양치질할 때마다 곰삭은 가래를 뱉어낸..

2020.07.02

홍성 궁리포구 낙조 여행

여행 / 서현미 무거운 구름을 안고 낮게 내려앉은 하늘을 바라보니 문득 커피가 그리웠다 바람타고 흐르는 커피향 그 향기를 타고 나는 가을을 훨훨 날고 싶다 추억도 그리움도 아품도 모두 다 묻어두고 나는 한 잔의 감미로운 커피가 되어 이 가을에 새로운 날을 향해 길을 떠난다 2019년 12월 31일 궁리포구의 해넘이 입니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 정호승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고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 가는 어두운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2020.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