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이 선물이 아니라면 / 문정희

농돌이 2023. 2. 5. 22:04

이 길이 선물이 아니라면 / 문정희

 

이 길이 선물이 아니라면

햇살마다 눈부신 리본이 달려 있겠는가

아침저녁 해무가 젖은 눈빛으로 걸어오겠는가

이 길이 선물이 아니라면

고요가 풀잎마다 맺히고

벌레들이 저희끼리 통하는 말로

흙더미를 들추어 풍요하게 먹고 자라겠는가

길섶마다 돌들이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

바람을 따라 일어서겠는가

발뒤꿈치를 들어

나는 그저 어린 날 배운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 보는 길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눈이

여름이 되어도 내려올 생각 없이

까치처럼 흰 눈을 머리에 쓴 채

그윽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이 길

설산으로 향한

이 길이 선물이 아니라면

 

저녁 노을 앞에서

문득 문정희 시인의 가을 우체국이란 시간 떠올랐다

---

가을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다가

문득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

 

노을에 젖는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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