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시모음

농돌이 2016. 8. 5. 21:16

수국을 보며 / 이해인

기도가 잘 안 되는
여름 오후
수국이 가득한 꽃밭에서
더위를 식히네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잎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

각박한 세상에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루어 하나 되는 꽃
혼자서 여름을 앓던
내 안에도 오늘은
푸르디푸른
한 다발의 희망이 피네

수국처럼 둥근 웃음
내 이웃들의 웃음이
꽃무더기로 쏟아지네   

 

 

여름일기 1 / 이해인

 

여름엔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아래 

나를 빨아 널고 싶다. 

 

여름엔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 

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뜨겁게 살고 싶다. 

 

여름엔  

꼭 한번 바다에 가고 싶다. 

바다에 가서 

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온  

섬 이야기를 듣고 싶다. 

침묵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그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오고 싶다. 


 

 

여름일기 2 / 이해인

 

오늘 아침 

내 마음의 밭에는 

밤새 봉오리로 맺혀있던 

한 마디의 시어가 

노란 쑥갓꽃으로 피어 있습니다. 

 

비와 햇볕이 동시에 고마워서 

자주 하늘을 보는 여름 

잘 익은 수박을 쪼개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초록의 기쁨이여 

 

우리가 사는 지구 위에도 

수박처럼 둥글고 시원한 

자유와 평화 가득한 여름이면 좋겠습니다. 

 

오는 아침  나는 다림질한 흰 옷에 

물을 뿌리며 생각합니다. 

 

우울과 나태로 풀기없던 나의 일상을 

희망으로 풀먹여 다림질해야겠음을  

지금쯤 바쁜 일터로 향하는 

나의 이웃을 위해 

한 송이의 기도를  꽃피워야겠음을... 

 

여름일기 3 / 이해인

 

아무리 더워도 

덥다고 

불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땀을 많이 흘리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용서하며 

해 아래 피어나는  

삶의 기쁨속에 

 

여름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여름일기 4 / 이해인

 

떠오르는 해를 보고 

멀리서도 인사하니 

세상과 사람들이 

더 가까이 

웃으며 걸어옵니다. 

 

이왕이면  

붉게 뜨겁게 

살아야 한다고 

어둡고 차갑고 

미지근한 삶은  

죄가 된다고 

고요히 일러주는 나의 해님 

 

아아, 

나의 대답은 

말 보다 먼저 또 오르는  

감탄사일 뿐 

둥근 해를 닮은 

사랑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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