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주기를 지나면서

농돌이 2022. 5. 23. 08:15

재의 얼굴로 지나가다 / 오정국

 

섣불리 손댈 수 없는 얼굴

 

이마에 재를 바르고

이마에 재를 바른 손가락을 헤아려 본다

거기에 매달렸던 기도와 눈물을

 

나는 재의 얼굴로 거리를 지나간다

재의 얼굴은

사막 여행자 같다

 

양의 귀에 내 죄를 속삭이고

칼자루에 힘을 줬던

벌판, 수천 겹의 밤길을 헤쳐 온

낡고 거친 이마를 씻고 문지르지만

 

재의 얼굴은 무심하다

재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는다

 

나는 재의 얼굴로

나를 지나간다

 

눈구멍을 움막처럼 열어 둔 채

벙거지 하나 걸치고

매일매일 딴 세상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애도하면서

나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분,

삶의 역동적인 움직임,

부존재에서 찾아오는 공허함을 깊이 느낌니다 

 

또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