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얼굴로 지나가다 / 오정국
섣불리 손댈 수 없는 얼굴
이마에 재를 바르고
이마에 재를 바른 손가락을 헤아려 본다
거기에 매달렸던 기도와 눈물을
나는 재의 얼굴로 거리를 지나간다
재의 얼굴은
사막 여행자 같다
양의 귀에 내 죄를 속삭이고
칼자루에 힘을 줬던
벌판, 수천 겹의 밤길을 헤쳐 온
낡고 거친 이마를 씻고 문지르지만
재의 얼굴은 무심하다
재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는다
나는 재의 얼굴로
나를 지나간다
눈구멍을 움막처럼 열어 둔 채
벙거지 하나 걸치고
매일매일 딴 세상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애도하면서
나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분,
삶의 역동적인 움직임,
부존재에서 찾아오는 공허함을 깊이 느낌니다
또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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