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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청마)은 누구인가?
호는 청마(靑馬)이고, 경남 통영 출생이다. 극작가 유치진의 동생으로 1922년 통영보통학교 4년을 마치고, 일본 도요야마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가세가 기울어 4학년 때 귀국해 1926년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1년 만에 중퇴하였다.
정지용(鄭芝溶)의 시에서 감동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31년 <문예월간>에 시<정적(靜寂)>을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데뷔했다. 그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시작을 계속했으며, 1939년 제1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를 간행하였다.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허무와 낭만의 절규 <깃발>을 비롯한 초기의 시 53편이 수록되어 있다.
1940년에는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만주로 이주하였고, 그곳에서의 각박한 체험을 읊은 시 <수(首)>, <절도(絶島)>등을 계속 발표하였다. 이 무렵의 작품들을 수록한 것이 제2시집 <생명의 서(書)>이다.
8·15광복 후에는 고향에 돌아와서 교편을 잡는 한편 시작을 계속하였고, 1948년 제3시집 <울릉도>, 1949년 제4시집 <청령일기>를 간행하였고, 6·25전쟁 때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하여 당시의 체험을 <보병과 더불어>라는 종군시집으로 펴냈다. 그 후에도 계속 교육과 시작을 병행, 중·고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통산 14권에 이르는 시집과 수상록을 간행하였다. 그의 시는 도도하고 웅혼하며 격조 높은 시심(詩心)을 거침 없이 읊은 데에 특징이 있다. 이는 자칫 생경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기교보다도 더 절실한 감동을 준다.
제1회 시인상을 비롯하여 서울시문화상·예술원공로상·부산시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사후에 그의 오랜 연고지인 경주에 시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시조시인 이영도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 중 200통을 추려 모은 서간집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1967)가 있다.
개심사 왕벚꽃 아래 서서 지나온 인연을 생각합니다
살다보면 많은 일들이 있지만,
사랑하고, 함께 나누었던 시간이 있어서
더욱 애틋합니다
긴 시간이 또 흘러서 다시 봄이 오듯이
인연의 끈이 오래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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