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편지 /나호열

농돌이 2020. 9. 22. 08:00

긴 편지 /나호열

 

풍경風磬을 걸었습니다

눈물이 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었거든요

너무 높이 매달아도 너무 낮게 내려놓아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오래 있다가 이윽고 아주 오랜 해후처럼

부등켜 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와르르 눈물이 깨질 때

그 안에 숨어 있던 씨앗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날마다 어디론가 향하는 손금 속으로

사라지는 짧은 그림자 말이지요

너무 서두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조금씩 솟아올라 고이는 샘물처럼

풍경도 슬픔을 제 안에 채워두어야겠지요

바람을 알아버린 탓이겠지요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입니다

힘찬 하루 여십시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아주기......나호열  (6) 2020.09.24
물든다는 말 / 나호열  (10) 2020.09.22
어찌 그립지 않겠습니까 / 김현태  (8) 2020.09.20
가을을 지나는 법 / 나호열  (16) 2020.09.19
이 가을에는.... / 이해인  (8) 2020.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