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비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싶었다 -이정하-

농돌이 2014. 1. 27. 21:26

가끔은 비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싶었다 / 이정하 

 

햇볕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으므로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

한점 나뭇잎으로 찍혀있고 싶었습니다. 

 

어서오세요, 그대.

비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어요.

 

아무런 연락없이 갑자기 오실 땐 

햇볕 좋은 날보다 비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주는 은사시나무, 비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소리. 

스쳐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려 

차창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형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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