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 / 노향림잡초 무성한 들판을 걷는다기억을 잃은 시아버지의한 달분의 약 처방전 받으러 가는 길로도핀 아라셉트 치매약 성분의알약을 삼킨 탓일까서로 다른 몸짓으로 쑥부쟁이 개쑥냉이 땅버들도멍한 낯빛을 하고 있다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입 속에가득 넣고 굴린다흩어지는 햇살이 멀리 양평 쪽 강물 위에은화銀貨처럼 쏟아져 구른다그 속을 거꾸로 처박힌 얕으막한 산들이팔짱을 끼고 비껴서 있다하반신에 풀이 돋는 바위도 보인다치유할 수 없는 병마에 시달리면산풀도 나즈막하게 얼굴이 뜨는 것일까버드나무가 발바닥 적시며 몸 가렵다고바람 속에서 박박 긁는 소리발소리 죽이고 아치형 철제 대문이 슬몃 열린병원 안마당에 들어선다. 아무도 없다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두 잊은끝모를 시간만이 고여 있다연분홍 철쭉이 비로봉 능선에 피어나기를..